임주언 개인전 PUZZLING

임주언
2024 03/13 – 03/25
3 전시장 (3F)

작가노트

PUZZLING [ pʌz·lɪŋ ]

  1. 헷갈리게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영문 모를 – 형용사로서의 회화

힘이 감각의 조건이라고 해도 실제 느껴지는 것은 힘이 아니다. 감각은 그것의 조건인 힘으로부터 출발하여 힘과는 전혀 다른것을 주기 때문이다. 가해진 힘은 감각되는 순간 살과 피부로부터 멀어지고 사라진다. 그리고 감각은 조각이 되어 다른 코드로 입력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진다. 보이지 않는 시간, 중력, 속도, 무게와 같은 힘과 거기서 느껴지는 감각을 어떻게 평면에 가시화할 수 있는가는 회화에 있어 중요한 질문이다.

하나의 가느다란 바늘로 종이를 뚫을 때, 찰흙을 뚫을 때, 물의 표면을 뚫을 때 모두 각기 다른 감각을 느끼게 한다. 수만 가지감각 중에서 나는 삐끗하고, 얇게 찢어지고, 애매모호하고, 반투명하고, 의도되지 않은 찰나의 순간, 데자뷰, 높은 음정의 희미한 피아노 소리와 아주 낮은 베이스 소리, 정갈한 질서 속에서 발견되는 한 끗의 흐트러짐과 같은 것들을 피부로 느끼며 이를 ‘어떤 형상’으로 은유하고 ‘계획되지 않은 붓질’로 가시화한다. 볼 수 없는 끌어당김을 보이도록 하는 것, 언어로 환원할 수없는 잔상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나의 회화적 임무다.

반대로 회화는 명확히 보이는 것, 정확히는 명확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다시 보게 한다. 안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을 모호하고 흐리게 만들며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낯설게 만든다. 과도하게 선명해진 이미지를 제거하고 느슨한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기 위해 작업에 등장하는 형상들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희미한 경계를 만든다. 현실과 비현실의색채, 뭉그러지고 늘어난 형태의 조화는 선명하지 않은 꿈의 되세김과 같은 경험을 대변하며 캔버스 화면에 안착한다.

 

  1. 퍼즐을 맞추는 행위 – 동사로서의 회화

퍼즐을 맞추는 것은 퍼즐이 완성되었을 때의 이미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상 퍼즐을 맞추는 과정을 위한 것이다. 하나의 조각을 여기저기 붙여보며 가장 이상적인 위치에 자리시키기를 반복하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 나에게 회화는 퍼즐과 같다. 완성된 하나의 작품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붓질의 행위와 치밀하고 대담한 감각의 발현이다. 동일한 내용이라 해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림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는 나에게 있어서 ‘무슨’ 내용의 이야기를 다루느냐 보다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질 수 없는 시간을 회화 속에서 편집, 확대하기 위해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하거나 때로는 서로 무관한 것들을 한 화면 안에

조합한다. 이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형상이 아닌 인상으로 잔재하는 감각을 가시화하는 방식이자 완결되어 보이는 개별 작품들이 결국 하나의 긴 파노라마에서 나왔음을 암시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퍼즐을 여기저기 붙여보며 자리를 찾아내듯, 반복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동일성의 차이는 느슨하고 기이한 이미지의 연결고리를 작동시킨다.

나의 작업은 두껍고, 무겁고, 탁하고, 진지한 것과 상응되는 것으로-얇고, 가볍고, 투명하고, 유머적이다. 그리고 나에게 유화는 흐름이 꺾이면 돌이킬 수 없는 드로잉과 유사하다. 반복적인 채색으로 두꺼운 그림을 ‘만드는’ 것이 아닌 얇고 빠른 붓질로 그림을 ‘그린다.’ 퍼지고 섞이는 물감, 흐르는 기름과 그것의 투명한 응어리, 흰 천의 여백, 납작하거나 뾰족한 붓질은 나의 그리기 방식이다. 뒤얽힌 형상들이 예상치 못한 감각을 전달하고, 눈으로 만지며, 살로 감각할 수 있는 전시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