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숙 개인전 Lim Young Suk

임영숙
2020 05/20 – 05/25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임영숙-색채의 향연

작은 쌀알은 바다처럼, 대지처럼 광막하고 홀연하게 퍼져있고 그 위로 다양한 꽃들과 소나무, 바위, 집 등이 모여 정원을 만들고 풍경을 이룬다. 장지에 깊이 있게 침윤되어 올라온 채색은 맑고 명징한 표정으로 특정 형상을 힘껏 밀어올리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식물의 아름다운 자태에 대한 선과 색의 극진한 공양과도 같아 보인다. 하얀 그릇 위로 수북이 담긴 밥 안에서 꽃들이 마냥 피어오르는가 하면 그 부분을 점차 확대해나가기도 한다. 근작의 특징은 그런 시선과 거리의 차이에 의한 비현실적인 공간, 낯선 감각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쌀밥에서 피어나는 꽃들 역시 그림 안에서만 가능한 장면이지만 근작에서는 바탕이 되는 밥만이 가득 표면을 채우는가 하면 마치 바위나 산처럼 커진 밥알들이 포개져있어서 좀 더 낯설고 생경한 장면, 환영을 자극한다. 그러한 연출도 돋보이지만 여전히 이 그림은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엿보이는 자연에 대한 태도, 그것의 이미지화와 민화에서 엿보이는 기복적인 그림의 힘들을 골고루 탑재하면서 완성도 높은 채색화의 한 수준에 겨냥되어 있다는 점이 우선된다는 생각이다. 그림 속의 꽃들은 색을 전달하는 매개가 된다. 그러니 이 그림에서는 색채가 결정적이다. 색은 특정 형상을 감싸고 지시하고 육체를 만드는 동시에 그것의 질감, 감수성을 피부에서 또렷하게 발아시키는 장소성이 된다. 색이 단지 칠해져서 표면을 마감하는 선에 머물지 않고 그 색의 힘이 빛처럼 방사되어 특정 존재의 밀도 높은 실체감이나 실존성을 호명하는 차원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채색화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채색은 현상적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체험을 야기하는 선으로 번진다. 우리 민화가 보여주는 채색이나 한복의 색, 오방색 등이 모두 그럴 것이다. 생을 유지하는 한 그릇 밥과 모든 생명의 근원인 자연, 그러한 자연에 대한 동경과 인간적인 생의 간절한 희구를 표상화한 전통회화를 응용하고 이를 전적으로 맑고 깨끗하면서도 강한 색의 힘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 작가의 그림이다. 자존감 넘치는 색들의 향연이고 합창과도 같다.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