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추안 개인전 허실생화(虛室生花)

왕추안
2025 11/05 – 11/10
2 전시장 (2F)

<허실생화(虛室生花)> 시리즈 창작 자서

장자가 말하길, “허실생백, 길상지지(虛室生白, 吉祥止止)”라 하였는데, 이는 잡념을 비워낸 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맑음과 평안함을 뜻한다. 「허실생화」 시리즈는 바로 이 “허실생백” 사유에서 비롯된 동시대적 상상이다. 유리병 꽃 시리즈 작품을 통해, ‘공(空)’과 ‘유(有)’, ‘허(虛)’와 ‘실(實)’에 관한 대화를 시각적 공간 속에 투사하고자 하였다.

“허실(虛室)”은 이 투명한 유리병들에 부여된 철학적 정체성이다. 그것들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작은 우주와도 같은 공간이며, 곧 ‘무(無)’의 화신이다. 수묵이 선지 위에 스며들고 번지는 과정은 본래 ‘허공’의 궁극적인 표현이다. 수묵의 변화를 통해 유리의 성질을 나타내되, 병의 실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규정하고 품어내는 한 조각의 ‘공허’를 드러낸다. 이 ‘공허’ 속에는 빛의 흐름, 공기의 고요,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

“생화(生花)”는 바로 이 허공 속에서 터져 나오는 생생한 생명, 곧 ‘유(有)’의 찬란한 선언이다. 꽃의 형상을 더 현대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전통적인 절지화(折枝花)의 고고하고 냉정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다소 자유분방하고 생기 넘치는 자세로 ‘허실’ 속에 놓아 두었다. 전통적 수묵화의 필법과 채색을 활용하여 수묵의 흥취와 꽃의 화려한 색채가 교차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마치 생명 자체의 격정이 투명한 허공 속에서 마음껏 피어나는 듯하다.

창작의 심경은 바로 이 ‘허’와 ‘실’의 긴장 속에서 균형과 평온을 찾는 과정이었다. 유리의 차갑고 단단함과 수묵의 따뜻하고 몽롱한 성질, 병의 기하학적 이성과 꽃가지의 자연스러운 굴곡, 이러한 상반된 요소들이 마침내 하나의 은근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마치 그 유리병과도 같았다. 내면을 맑고 비워 두려 애쓰며, 그 안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형상이 저절로 생겨나고 머물 수 있도록.

「허실생화」 시리즈는 가장 전통적인 언어로 동시대 삶에 남긴 하나의 주석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마음은 자주 혼잡하다. 나는 관람자가 이 그림들 속에서 일종의 ‘여백’의 지혜를 보기를 바란다. 우리의 내면이 잡념 없이 깨끗한 ‘허실’이 될 때, 진정으로 생생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비로소 또렷하게 드러나고, 그 안에 평온히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