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이 개인전 먹의 유전 · 流轉
오순이
2022 04/06 – 04/11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오순이의 작품세계
생명의 기운을 담아내는 오묘한 수묵의 변주
신항섭(미술평론가)
전통적인 수묵산수화는 예로부터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찬미해왔다. 수묵산수화는 실재하는 자연의 수려함을 여실히 보여주려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름다운 풍경에 미의식 및 미적 감정을 개입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되었으리라. 보이는 사실의 재현만으로는 창작의 욕구를 채울 수 없어, 자신이 보고 느낀 감흥을 함께 담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리게 되었는지 모른다. 수묵산수화의 궁극은 실제에 개의치 않는 이상적인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향에 대한 꿈은 인간의 영원한 욕구이기에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는 산수화 또한 현실 너머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순이의 산수화는 실제의 풍경에 근거하면서도 실제와는 다른 관념적인 세계를 지향한다. 즐겨 쓰는 작품 명제 <내 마음의 풍경>이 시사하듯이, 마음이 지어낸 산수화인 셈이다. 즉 현실에 실재하는 풍경이 아니라 심상 풍경이다. 전래의 관념산수는 대체로 이상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추구해왔다. 중국의 북종화가 그러한데, 이는 실제보다 과장된 아름다운 풍경을 좇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이상미는 허황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말하고 있듯이 비현실적인 이상향을 펼쳐놓은 관념산수에도 심미 세계가 존재한다. 이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야말로 관념산수의 출현을 부추긴 요인의 하나이다.
그의 작품이 관념의 세계를 지향한다지만 전래의 관념산수와는 또 다르다. 즉, 견실한 묘사력에 기반으로 한 기암괴석 등 수려한 이미지로 꾸며지는 북종화의 가공된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의 산과 물이 있는 풍경이 이를 말해준다. 봉긋한 동산 형태가 대다수인 산의 모양새가 그렇다. 바위가 돌출한 암산일 경우에도 완만한 봉우리 및 능선이 정겹게 느껴지는, 한국 특유의 산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마음의 풍경이라 했지만, 사실에 근거하는 산의 형태미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의 산수화를 관념적으로 보는 까닭은 함축적이고 간결한 형태 감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벗어난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과장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온한 한국 특유의 산세를 담담하게 펼쳐놓는다. 그러고 보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구태여 북종화 또는 관념산수의 개념에 대입시킬 필요조차 없을 듯싶다. 실제와는 엄연히 다른 함축적이고 간결한 형태 감각은 이상미에 가깝기에 이 또한 실사의 실경과도 일정한 거리가 있다. 한마디로 직접 현장에서 취재해서 옮기는 재현적인 표현방식이 아닐뿐더러, 많은 부분에서 자의적인 해석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실경산수 또는 진경산수는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말하는 관념산수는 실경산수에 대응하는 의미로서 비현실성을 말할 뿐, 실제로는 문인화의 속성을 지닌 수묵산수에 훨씬 가깝다. 실재하는 풍경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산수 경치일 뿐이라는 점에서는 관념, 즉 마음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이라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관념산수와는 역시 차이가 있다. 실제보다 더 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략과 단순화 그리고 재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까닭이다.
형태를 생략하거나 단순화하는 등 조형적인 재해석은 눈에 보이는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심회를 표출하는 데 중점을 두는 문인화의 속성을 닮아있다. 그래서일까. 전체적인 풍경은 간소하기 이를 데 없다. 보이는 사실에서 자유롭기에 구체적인 형태 묘사 자체를 개의치 않음으로써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크다. 문인화가 그렇듯이 형태 묘사보다는 심의, 즉 마음속에 품은 뜻을 드러내는데 주안점을 둔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눈에 보이는 풍경은 심미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나무를 묘사하는 경우 필력보다는 즉자적인 감각에 맡긴다. 오랫동안 익힌 필법을 통한 나무 표현은 순간적인 감흥에 이끌린다. 줄기가 곧고 바르지 않으나 세련된 필치와 신체적인 힘이 지어내는 생생한 표정은 지극히 감각적이다. 형태 자체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존재감을 슬쩍 드러냄으로써 느끼는 미적 쾌감이 있다. 많은 부분에서 생략과 절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유독 나무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산과 물 그리고 바위와 나무 등 자연풍경을 이루는 요소들로 이루어지는 그의 산수화는 오히려 간소한 남종문인화에 근사하다. 실경을 근거로 하되 산수화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구성요소만을 남김으로써 심회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번잡한 수사를 지양하고 자연미의 핵심만을 추출하려는 듯싶은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다. 문인의 취향에 부합하는 간결함은 생략과 단순화, 그리고 절제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비어 있고 허전하다는 느낌은 없다. 세부적인 묘사를 지양함으로써 되레 사유의 공간이 커질 따름이다.
이는 심의의 표출 또는 고상한 정신의 결을 중시하는 문인화로서의 격조를 중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눈으로 읽히는 형상은 되도록 간명하게 압축한다. 산수화로서 갖추어야 할 요소인 산과 물 그리고 나무나 바위도 최소한에 그친다. 구체적인 형태 묘사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형태가 자세히 드러나면 시각적인 이해는 쉬울지언정 여운을 느끼기 어렵다. 그림 스스로가 모든 사실을 다 드러내면 그림 속에 담긴 화가의 사상이나 철학을 탐색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생략과 절제를 통해 화가 자신의 내면, 즉 사상이나 철학을 담는 방식이야말로 문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최근에 와서 필선 중심의 이전 작업과는 확연히 다른 선염 중심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선염은 한지에 물을 바른 뒤 수묵이나 담채로 번짐 효과를 나타내는 표현방식이다. 대체로 운무나 설채에 이용하는 표현기법인데, 필선 중심의 표현은 필력에 의지하는 반면에, 선염은 종이와 물 그리고 수묵이 가지고 있는 물성에 맡기는 식이다. 다시 말해 화가의 의지보다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성질에 의존하는 경향이다. 따라서 우연적인 효과는 선염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필선 중심의 화법은 일회적인데 반해, 선염 중심의 표현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작업을 해나갈 수 있다. 적묵, 즉 수묵을 여러 차례 덧쌓는 일이 가능하여 작업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깊고 오묘한 표현을 얻을 수도 있다. 심상이나 심의를 한층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효과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형태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버림으로써 조형적인 상상의 여지는 커지고, 시각적인 이미지는 풍부하게 된다. 또한 문학적인 정취를 담는데 수월해지는가 하면, 사상이나 철학적인 내용을 담는 데도 유리하다.
이는 조형적인 운신의 폭이 커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럼으로써 정취나 여운 그리고 심미 표현과 같은 정서적인 측면의 비중을 높일 수 있다. 이렇듯이 시각적으로 분별할 수 없는 정서를 담고 또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문인화의 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각적으로 인지되지는 않으나 심정적으로 느끼는 정서는 예술이 지향하는 심미적인 표현에 일치한다. 그의 선염 작업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한마디로 현상계에만 머물던 시각에서 벗어나 마음 및 정신의 영역으로까지 시야를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농묵과 담묵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담채를 곁들이는 산수풍경은 운해가 포진하는 봄날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가을풍경이어도 다르지 않다. 특히 농묵과 담묵의 오묘한 조화와 깊이를 잘 보여주는 바림 기법은 신비스럽고도 환상적인 이미지를 불러들인다. 바위 또는 나무의 존재조차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단지 실루엣의 이미지만으로 산세를 표현한 작품들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어쩌면 선계가 아닐까 싶으리만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지어낸다. 그러고 보면 이는 확실히 관념의 산물이다. 현상계의 풍경을 기반으로 한다지만 실상은 현실 세계를 초월한 이상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기에 그렇다.
바위나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맨숭맨숭한 산이 아니라 물상을 함축하거나 내포한다. 여기에는 기운생동의 미학이 구현되고 있다. 눈으로 읽히는 산과 물은 최소한에 그치지만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불러들임으로써 생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수묵산수화의 힘은 기운생동으로 귀결한다. 비록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것이 아닐지언정 그림에 내재하는 생동하는 기운이야말로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의 본질이다. 그림의 기능이 감동을 주는 데 있다면 그 중심에 생명의 기운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내 마음의 풍경>이 지향하는 그의 조형 세계는 수묵의 오묘한 변화가 지어내는 생명의 기운을 받아쓰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