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 5인전 슴슴 5인전 2019
방윤희, 안상미, 주연하, 최동숙, 최진영
2019 12/11 – 12/16
2 전시장 (2F)
전시소개
슴슴 : 맛이 싱겁거나 상태가 잔잔함을 나타내는 단어
슴슴은 만화예술을 전공한 동기 5명이 함께하는 전시입니다. 각자의 입맛에 맞는 시간을 보내다가 모여 보니 이 맛도 저 맛도 아닙니다. 간을 맞출 때는 처음엔 슴슴하게 하고 모자른 맛을 첨가하듯이 슴슴의 전시도 맛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려합니다.
작가노트
<방윤희 작가노트>
나는 선함과 악함이라는 영역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원초적인 에너지에 대해 몰입하고 있다. 내가 그 힘을 쫓게 된 건 그동안 내가 살았던 세상에서 쫓겨나 다른 세상으로 던져졌을 때부터였다. 그 세계에는 온갖 두려움이 들어차 있어 나를 계속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짜부라진 나에게는 세상에 설 수 있는 어떤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은 저기 높은 곳에서 나무들을 휘두르고 있는 원초적인 힘, 바로 야생의 바람이었다.
-집 앞의 낮은 산을 가만히 본다. 바람이 키 큰 나무들을 휘두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바람이 부는 곳에 있으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어떤 에너지가 감싸는 느낌이 든다. 두려우면서도 피하고 싶지 않은. 그 바람 속으로 나도 달려들고 싶어 근질거리는 느낌-
야생의 바람 안에선 어떤 질서도 있을 필요가 없고 바람이 부딪히는 어떤 존재들과 바람이 통과하는 어떤 공간들만이 있을 뿐이다. 빛과 어둠을 통과해 선과 악을 넘어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흐른다. 나는 무심히 길을 가다가 길가에 심어진 나무들에서 바람의 흔적을 느끼곤 한다. 원초적인 생명력 안에 들어있는 야생의 힘은 나에게도 어떤 에너지를 전달해 준다. 나는 그 힘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고 싶다. 야생의 바람이 전해주는 원초적인 에너지가 담긴 그림으로.
<안상미 작가노트>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그리던 그림 앞에 서서 우두커니
퇴근 후 맨 먼저 그리던 그림 앞에 서서 우두커니
잠들기 전 또 우두커니
어떤 날은 아무 선도 색도 칠 할 수 없이 한 시간..두 시간.
두근거려 그리고픈 내 마음 내 시선 나의 생각과 말들이 가슴에서
손끝으로 쥐고 있는 연필로 붓으로 달려나가 가도
출발 총성을 듣고도 제 자리에 멈춰 선 아이처럼
때때로 나는 그렇게 그리던 그림 앞에 덩그러니 서 있다.
말로도 글로도 전 할 수 없는 소리와 마음들.
그 불 분명함이 나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고
우두커니 또 덩그렇게 바라보게 한다.
<주연하 작가노트>
우연히 종이와 연필, 지우개 그 외의 간단한 재료로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연필인물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취미 삼아 조금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 그림 전시 준비를 하면서 내가 뭘 그려야 할지 그리고 그림의 완성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단 완성도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렸고 그리는 동안 내가 알지 못한 사람 얼굴에 대한 좀 더 관찰하게 되었으며 그림이 완성되어 갈 때마다 나 자신에게 힐링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가시는 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힐링을 받고 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최동숙 작가노트>
나는 강에 비친 내 거뭇한 상채기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강물소리가 내 안을 잔잔하게 흘러갔고 고요해졌다.
내 어둠을 씻겨줄 그리운 소리를 찾은 것이다.
그리운 소리들을 찾아가면서
음악 치유사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치유를 상징하는 고대문양이었다.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아이처럼
나도 북에 그려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끙끙거리면서
붉은 튤립 땅의 아이를 그렸다.
서툰 붓놀림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새로운 내가 태어난 것처럼 기뻤다.
맨땅을 뚫고 솟아나 피어나는
튤립의 생명력은 나를 꿈꾸게 하고
서툴러도 자신을 표현해보라고 말을 건냈다.
그 말을 믿고 서서히 그려갔다.
마음이 조급해질때마다
내 안의 수많은 모습들을 지켜보며
북을 두드려보았다.
온 감각으로 전해지는 울림들은
그날의 강물처럼 내 안을 두드리고 흘러갔다.
그리고 형상들이 다가왔다.
북 위에 피어난 형상들이
목소리를 내며 생명을 얻기를
어느 날 내 안에 흘러갔던 강물소리처럼
누군가의 깊은 곳에도 고요하게 흘러가기를
기도하고 싶다.
<최진영 작가노트>
[pause, record and replay 빛의 입자와 파동을 인공으로 재생하는 방식에 대하여]
차창 밖을 보는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는 인생을 ‘비자발적으로 흐르는 단선율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버튼을 누르고 얼마간 소리를 기다리면 물결처럼 독주곡이 흐른다. 무거운 버스 바퀴에 속력이 붙기 시작하자 창밖의 소란들이 내 오른뺨을 스쳐 뒤로 밀려 멀어진다.’
그는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소멸에 대해 겁을 냅니다. 흐르는 시간에 극단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는 피아니스트 지망생이지만 사정이 이러하니 연주가 잘 될 리 없죠. 그는 어째서인지 고통을 주는 연주대신 다른 것에 골몰합니다. 십 수년 전에 그가 있었던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창밖으로 보이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히, 온전히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이미 그곳은 그때가 아닌 다른 곳이 되어있음에도 말입니다. 마구 달려왔다가 뺨을 스치고 가는 가로수 잎사귀들의 모양과 흔들림 전부, 어떤 대상을, 그의 말과 눈빛, 의미, 그때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입김의 형태와 변화까지 모조리, 완전히 기억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그의 강박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이런 만년 박치 피아니스트 지망생의 ‘단선율’은 그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속력으로 흘러갑니다.
자작 단편 소설 [재생] 속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곁을 스치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단선율에 섣불리 맞서지도,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고서
무언가를 붙들고(pause) 기록하는(record) 일. 저는 이것을 창작이라 여기고 있어요.
그리고 창작의 완성은 재생하는(replay) 중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의 그는 이야기의 끝에서 재생(再生)을 합니다. 그렇게 다른 이에게 들려주고 나서야 그것이 그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도 그러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그렸어요.
보아주신 분들께 시간을 앞서서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