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렬 개인전 자리!

박준렬
2024 10/16 – 10/22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어린시절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드려야 했다. 넓은 밭에 온가족이 둘러앉아 토닥토닥 들깨를 터는 풍경, 뜨거운 가을 햇살아래 작대기(도리깨)에 맞은 들깨씨앗은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고… 해가 질 무렵까지 깨 타작은 계속되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행복했던 유년시절이었다.

 

아버지의 굳은살 박힌 거친 손을 통해 자루로 담아지는 깨알들을 바라보며 드디어 일이 다 끝나감 을 알았던 기억.

 

몇 번을 두드렸을까?

 

고소한 향기만큼 이나 수확량은 마음을 풍요롭게 했고, 그 풍요가 행복에 젖게 하는 시절 이었지만, 이제는 그 그리움의 목가적 풍광 보다 더 가슴시리도록 부모님이 생각난다.

 

이번 나의 작업은 과거 행복했던 수확의 순간을 재연하며 그 행위로 남아지는 흔적을 최대한 살려 리얼한 디테일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데 있다.

부지깽이만한 나무 막대기에 물감대신 먹물을 묻혀 깨 타작을 하듯이 수없이 두드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그 막대기에 의해 타날 된 먹물의 흔적을 이미지화 하고 있다.

 

막대기질의 무한 반복은 어린 시절 깨 털기만큼이나 행복한 과정은 아니지만 나에겐 부모님의 삶을 과거의 연속적 행위를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자리!

이번 전시의 제목이다.

나의작업을 지켜보며 친구가 붙여준 이름으로 고민 없이 제목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지난날 삶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와 이제는 그 삶을 생각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친구가 공감해 줌으로써 이번 작업의 화두가 결정된 것이나 그 결과가 얼마나 만족스러울 지는 아직 미지수다. 여하튼 과거를 회상하며 다시 한 번의 깨 털기 작업을 오랜 시간 시도하면서 금번 전시의 주제가 되는 ‘자리’ 연작시리즈를 마무리 하고 있는데… . 다음의 작업은 보다 풍요로운 수확을 연상하며 작업해보는 것이 어떨까, 스스로의 기대를 부풀리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