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종 개인전 우후(雨後), After Rain
고영종
2020 10/07 – 10/12
2 전시장 (2F)
우후(雨後), After Rain
올해 여름, 비가 참 많이도 왔다.
지금까지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이렇듯 중구난방으로 그림에 대한 생각들이
내 속에서 튀어 나온 적이 없는 듯하다.
항상 생각을 거듭하다 모아진 생각들을 정리하여 집중했었는데
이번엔 그렇게 되질 않는다.
흑백과 여백의 작업을 진행하다 갑자기 청색이 간섭을 하더니
어느 순간 금색과 은색도 그림 속에 끼어들기 시작한다.
그림이 생각을 따라잡질 못하고,
생각은 그림을 멀찌감치 던져놓고 저만치 가있다.
그렇다고 이 작업들이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내가 그 동안 못 알아차리고 있었을 뿐이지
내 안의 어느 부분에선가 있었을 생각들이고 욕구들이다.
결국 다 내 것이고 나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그래서 그냥 정리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모아놓기로 했다.
어차피 흑백으로 집중할 때도
한 주제로 나열하는 것은 질색인 작업이었다.
비 온 뒤 느닷없이 쑥쑥 솟아나는 죽순처럼
올 여름 많은 비에 내 마음 속에도 뜬금없는 죽순들이 자랐나 보다.
그래서 전시 이름을 ‘우후(雨後)’로 붙였다.
어떤 것들은 뼈대만 남은 흑백의 담백함으로 솟아나고,
어떤 것들은 그 흑백에 금속의 생경함이 다시 묻어 솟아나기도 하며,
이리저리 뒤틀리고 순간순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솟아나왔다.
그래도 모아놓고 보니 다 내 분신들이다.
어딘가 비어 있고, 시간의 흐름에 민감해하며 한없이 작은,
그러나 그걸 알기에 더없이 건방질 수 있는 인간과
그 인간들이 축내고 있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 2020. 어느 날 작업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