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n Wilson 개인전 For the love of it
Steven Wilson
2019 07/31 – 08/12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스티븐 윌슨
영국 출신의 Steven Wilson은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Saatchi Gallery Private View”에서 차세대 작가 30인의 전시회에 초대 받은 촉망 받는 작가입니다.
화려하고 독특한, 그리고 생기 넘치고 활기찬 스타일로 유명한 Steven Wilson은 다양한 프린트 작품 뿐만 아니라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디자인 및 아트 디렉션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흔히 잘 알려져 있는 오브제들을 수집하고, 그 수집품들을 자신만의 컬러와 시각으로 표현하여 다양한 광고, 상품 등에 접목, 전 세계에서 소비되고 있습니다.
팝 아트 이후 현대미술에서 새롭게 선보여질 수 있는 영역으로 제품과 작품, 상품과 예술 사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SONY 뮤직의 앨범 쟈켓 디자인을 시작으로 PEPSI , NIKE, Microsoft, HERMES, WALT DISNEY 등 수 많은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Wilson이 제작한 결과물은 팝적이고 대중친화적인 손길로 현대미술의 지평을 한층 넓혀주고 있습니다.
자본의 혈류를 타고 흐르는 스티븐 윌슨의 색깔
박준헌 (미술이론, Art Management UNION 대표)
1964년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브릴로 박스(Brillo Box)」가 발표되었을 때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인 아서 단토(Arthur Danto, 1924~2013)는 이 작품을 근거로 ‘미술의 종말’을 주장했다. 그의 요지는 “다원주의 시대에 작품의 외형은 더 이상 미술의 자격을 부여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소비의 사회』라는 책에서 우리가 익히 팝아트라고 동의하고 이를 대표하는 앤디 워홀을 작품을 “서명이 소비되는 사물로서 예술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지위를 추구한 최초의 형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 혹은 기원은 1917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 1968)의 작품 「샘(Fountain)」을 시작으로 볼 수 있다.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개념과 작가의 서명이 들어 있는 어떠한 사물도 작품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선보인 사건 말이다. 이로부터 50년 후 앤디 워홀은 「브릴로 박스(Brillo Box)」를 통해 사회의 산물인 기성의 상품에 서명이 포함된 작품을 우리에게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현대미술이라고 하는 어떤 개념과 형식을 대중에게 추인 받을 수 있었다.
역시 그로부터 역시 50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는 더욱더 분화되고 확장된 예술의 형태와 양식이 우리 앞에 제시되고 있다. 이제는 굳이 작가의 서명, 공인된 전시 공간 같은 이전 시대의 문법을 따를 필요조차도 없을 만큼 예술은 광의적이고 일상적인 개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예술이라는 것이 특수한 조건과 상황을 갖춘 것이 아닌 우리의 삶과 일상에서 존재하고 소비되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고, 그 기저에는 고도의 기술 개발과 정보의 공유와 소통이 밑받침 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 모든 것이 예술이고 모두가 예술가인 시대에 당면한 것이다. 규정할 수 없기에 모두에게 열려 있고, 모두에게 열려 있기에 더더욱 예술을 특수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시대가 된 것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자본의 시대는 모든 것을 시각화 시키고 그것을 소비시킨다. 그것이 지금의 시각을 다루는 예술들이 당면한 현실이다.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관통할지는 예술가 개개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시대는 모든 것이 거래되고 재화로 공인되어야만 가치를 획득할 수 있고, 의미를 부여 받을 수 있다는 것이며 예술 역시 여기서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 시대의 예술가들에 비해 동시대의 예술가들이 시장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연스러운 귀결이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스티븐 윌슨(Steven Wilson)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시각예술의 요청을 자신만의 독특한 컬러와 문법으로 채색해 나가면서 문맥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 작가이다. 런던 출신의 아티스트인 그는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흔히 잘 알려져 있는 일상의 오브제들을 수집하고, 그의 수집품들을 자신만의 컬러와 시각으로 표현하여 다양한 광고, 상품 등에 접목시켜 전 세계에서 소비하고 있다. 팝아트 이후 현대미술에서 새롭게 보여질 수 있는 영역으로 제품과 작품, 상품과 예술 사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시대에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그의 작품 혹은 이미지들은 매우 감각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그의 화려하고 독특한, 그리고 생기 넘치고 활기찬 스타일의 작품은 다양한 프린트 작품뿐만 아니라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디자인 및 아트 디렉션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로 구성된 제품 기반을 통해 대중의 삶 속에서 소비되어 그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주로 명품과 글로벌브랜드라 일컫는 대중과 친화적인 제품들에 차용되고 콜라보레이션 되는 그의 작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인구 15만이 고작인 영국 남동부의 브라이턴(Brighton)의 한적한 항구도시에서 수도자적인 삶으로 본인이 좋아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이미지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스티븐 윌슨의 작업 방식은 현대의 소비 사회에서 글로벌이라는 어떤 표준과 브랜드라고 하는 자본의 혈류를 타고 흐른다. 그의 작업은 이를 바탕으로 국경과 인종과 성별을 초월해서 존재하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앞으로의 예술이 어떻게 전개되고 나아갈 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티븐 윌슨의 작업은 지금의 시대를 요약하는 수많은 방식 중 하나의 모델이고 형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낄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어떤 형식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우리들의 선택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작업을 무엇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냥 세상을 자신의 감각과 색깔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혼재하는 세상. 그래서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 스티븐 윌슨의 작업과 작품을 통해 ‘나’라는 개인이 바라보는 세상, 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존감을 성찰하고 지금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의 예술이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