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 개인전 Nostalgia 노스텔지아
윤지원
2019 01/09 – 01/21
3 전시장 (3F)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윤지원의 작품은 일종의 시간 여행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작가의 의식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계단을 부단히 오르내리며 낚아 챈 이미지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들은 지극히 사적인 언어로 정제돼 있다. 그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이를 바탕으로 작업하길 즐기는데, 우리가 예술을 가리켜 ‘내면의 풍경에 대한 서술’이라고 예술의 수많은 가지들 중 하나를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작품이 바로 윤지원의 그림일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는 시적인 서정으로 가득 차 있다. 말하자면 ‘회화는 시처럼(ut poesis pictura)’이란 근대의 예술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풍경이나 사태가 하나의 의미로 가슴에 다가 왔을 때,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화가나 시인이나 다 같다. 단지 매체나 수단이 다를 뿐이다. 화가는 물감과 붓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펜으로 원고지에 쓴다. 내가 보기에 윤지원의 그림은 붓과 물감으로 쓴 시처럼 보인다. 그의 그림은 얼핏 보기에 한 없이 잔잔해 보이지만 그 창작의 이면에는 격렬한 정신적 고뇌와 번민이 자리 잡고 있다.
거리 풍경을 대하는 윤지원의 섬세한 감성은 슬픔을 연상케 하는 푸른 색조와 도시의 우중충한 분위기를 암시하는 회색조,그리고 그러한 우울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따뜻한 노랑 색조를 통해 투사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윤지원의 작품에서 맡아지는 우울한 그림자는 일종의 가역적 풍경이랄 수 있다. 우울과 고독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역설이 깔려있는 것이다.
윤지원이 그려내는 풍경화는 분명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들은 지구상에 실존하는 지역이다. 그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이를 근거로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정작 캔버스에 나타난 풍경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 한 구석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과연 이러한 효과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나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 주목하고 싶다. 풍경을 대하는 그 특유의 비전은 마치 단순한 무대의 세트처럼 현실적인 거리를 끊임없이 ‘익명화’한다. 그것은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기시감(deja vu)을 느끼게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익명성에 있다.
그의 그림은 익명의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윤지원은 그러한 감정을 형상화하는데 성공하고 있고, 한낱 도시의 황량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