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개인전 같은 시각, 다른 시선_시간의 기록

최정미
2024 07/03 – 07/09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같은 시각, 다른 시선_시간의 기록

 

  • 비트겐슈타인은 하나의 언어를 상상하는 것은 하나의 삶의 형식을 상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간딘스키는 색은 영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며 피아노의 건반이고, 눈은 피아노의 현을 치는 해머라고 했으며, 영혼은 여러 선율을 지닌 피아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영혼을 진동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건반을 두드리는 손이라고 했다. 그들의 생각이 이 시대의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하나의 색을 쓰며 하나의 언어를 떠올리고 또 다른 언어를 계속 떠올린다. 그렇게 천천히 찾아가는 색들은 내 삶이 되고 있다. 간딘스키의 말처럼 색은 내 영혼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확실하다. 다른 생각, 다른 시간에 나의 영혼을 가두지 않고 오로지 캔버스에서 공간을 찾고 빛을 찾으며 계속 들어가 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색들은 나도 모르게 그들의 언어를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공간을 보고 들어가면 새로운 공간이, 또 새로운 공간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 터너(Turner), 세잔(Cezanne), 반 고흐(van Gogh),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마티스(Matisse), 샤갈(Chagall), 말레비치(Malevici)… 더 많은 화가들이 있지만 작업을 할 때면 이들이 자주 떠오른다. 색채는 단지 물질적인 요소일까? 아니면 정신적인 가치를 지닌 질료이거나 감정을 창조할 수 있는 표현 수단일까? “피에르 프랑카스텔(Francastel Pierre)은 ‘시멘트가 현대 건축에서 기본 재료이듯 색채는 현대회화의 출발점이다‘라고 말했다. 자연의 빛에서 나오는 색채는 현실을 묘사할 수 있으며, 눈에 보이는 세계를 재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나는 눈이 지각하는 외적 현실을 모방하고 색을 통해 내적 현실을 표현하면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많은 화가들이 외부 세계에서 점차 내면적, 정신적 세계로 그들의 관심을 옮겨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내 작업에서 색채의 본질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나만의 고유한 개념을 만들고, 언어를 만들고자 했다.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고대에서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색보다는 데생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특히 선택된 주제나 이야기의 정확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데생을 선호했다. 색은 매력적이었지만 보조적 수단이었고, 색의 유일한 목적은 이야기가 만들어낸 효과를 뒷받침하고 이야기의 신빙성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회화가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나의 눈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나만의 감각으로 섞어낸 색을 빌어 내면의 자연을 재현하는 것, 이것이 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나에게는 미술의 회화사에서 정의된 미학이나 규칙에 맞추어 자연을 복사하려는 마음도 의무감도 전혀 없다. 현대 회화사에서 우리는 뛰어난 색채가나 천재적인 화가들을 수없이 만나지만 그들에겐 그들의 색채가, 나에겐 나만의 색채가 있고 화가로서의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색채는 현대 회화의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의 머릿속에서, 실제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이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괴테(Goethe)는 자신의 저서 ‘색채론’에서 색채의 이론을 설명하는 물리적, 수학적 특성 즉 개념적 특성은 개인의 경험적 특성으로, 감각적 인지적 영역이나 감정적 영역으로 변화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색의 이론이 ‘사각의 세계, 온전히 형태와 색으로 형성된 세계를 통해 사각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였으며, 인간의 외부를 내면에 연결시키는 시선의 도움을 받아 자연은 이상적이고 지고한 형태로서가 아니라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체험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다고 하였다. 이렇듯 괴테는 색채를 눈과 연결된 생리적 현상으로, 정신적 감정에 연결된 심리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현상으로 고찰하였다. 그리고 프란스 게리슨(Franz Guerison)은 색이나 형태와 같은 시각적 요소들을 해석하는 것이 창작의 심리적, 생리적 과정과 다름없다고 정의한다면 그것은 가시적인 세계의 아름다움이 우리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색은 인간과 세계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느낌으로서의 색은 외면적이며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다. 그것은 수동적인 요소이면서 물질세계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리고 표현으로서의 색은 주관적이며 감수성과 사고에 연결이 되는 것이다. 이때 색은 적극적으로 세계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현대 화가들은 빛과 색을 동일시하였으며, 이러한 시각은 색에 인간과 세계 사이의 ‘중재적(仲裁的)’ 위상을 부여하였다. 이 위상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외적이며 객관적인 요소로 색과 빛은 우리들의 눈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며, 내적이고 주관적인 요소로 그것은 회화를 통해 가시적 세계를 조형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색과 빛에 자연을 재현하고 묘사하는 기능 외에도 시적이며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눈은 밖의 세상을 비추고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다. 눈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결합이 이루어지는데, 화가들은 저마다 색을 지각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