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선 개인전 전봇대

조효선
2023 06/21 – 06/26
2 전시장 (2F)

전봇대

집 앞 전봇대에 걸쳐진 전기 줄에 까치가 와서 울어대는 날엔 어김없이 편지가 왔다.

그러면 유일하게 나 혼자만의 장소인 냄새나는 변소로 들어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지나간 그 세월을 생각하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나 싶다.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 때문인지 전봇대는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피사체중의 하나가 되었다.

침묵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이 감당되지 않을 때 배낭을 메고 출사 길을 나섰다.

어느 곳에서든지 늘 외로움은 공존하지만 셔터를 누르는 기쁨이 있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소식도 전하고, 어두움을 밝히는 등 키다리 아저씨 같은 전봇대.

나라마다 조금씩 변형된 모습이 눈에 들어와 소통을 생각하면서 담았다.

전봇대를 볼 때마다 너와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상관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봇대를 통하여 전하고 싶었다. 어둠속에서 혼자 많은 것을 비추려 전깃줄을 이고 서 있는 전봇대. 누군가의 가슴에도 긴 선으로 연결해 전봇대가 밝혀주는 불빛의 따뜻함으로 침묵으로 일관해 온 내 안의 얼어붙은 언어들을 녹여서 밝은 빛 쪽으로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들의 삶도 서로 긍정의 따뜻함이 채워지기 않을까 희망하며 이 작업에 임했다.

 

-조효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