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은 개인전 ONCE UPON A TIME

전예은
2024 01/17 – 01/22
3 전시장 (3F)

작가노트

흰색 불투명한 천을 뒤집어 쓴 유령의 모습을 한 형상이 있습니다. 이것의 이름은 하무[Haamu]이다. 하무는 작가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어 나타난 형태이며 숨기고 싶은 마음과 고립욕구를 표현하고자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하무’는 핀란드어로 유령, 허깨비, 환상, 자취등으로 해석이 되는데 이러한 단어를 하무의 이름으로 한 이유는 허깨비라는 뜻에 있다. 허깨비는 기가 허하여 착각이 일어나 없는데 있는 것처럼, 또는 다른 것처럼 보이 는 물체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추고 싶은 욕구와 고립욕구를 나타내는데 형상에 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작가는 하무란 캐릭터로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하무를 그리고 있다. 처음 하무라는 캐릭터를 생각하고 설산, 전시장, 사막, 숲속, 침대 등 특정장소를 설정해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침대라는 공간은 현실과 상상 사이를 연결해 주는 곳을 나타내고 사막과 잔디밭은 상상 속의 공간을 나타낸다. 작가의 그림속에서 지네는 떨쳐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는 불편함과 두려움을 나타내고 그림자는 사람의 그림자나 자취로 소심함을 표현한다. 작가는 처음 ‘하무’라는 특정 캐릭터를 구성하기 시작한날부터 1년 동안은 ‘하무’의 혼란스런 마음, 개인과 단체 그리고 고립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후 또 1년 동안에는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행복을 다시금 되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숨기고 싶은 마음과 고립욕구를 표현하던 ‘하무’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변화하고 또는 성장하는지를 표현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망각과 기억이라는 주제와 하무의 탄생설화를 소개한다.

먼저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들이 기억을 긍정적인 능력으로, 망각은 부정적인 능력으로 인식해온 반면 동양 철학자인 장자는 망각을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장자는 비움이나 망각은 무관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관조를 위한 무관심이 아니라 그것은 타자와 마주쳐서 울림을 내기위한 무관심, 즉 마주침을 위한 무관심이라고 했다. 작가는 이것이 하무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타자와의 단절을 위해 천을 뒤집어쓰고 있으면서도 그 무관심과 비어있음 넘어, 타자와의 마주침 즉 조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제 하무는 고립되고 싶어 하는 형상에서 타자와의 마주침은 받아드리는 단계까지 발전해왔음을 나타낸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어떤 것은 잊고 어떤 것은 기억하는 원리에서 어떤 규칙은 찾을 수가 없다. 작가는 그런 당연한 일상의 모습에 하무를 배치하고자 했다. 그리고 앞서 그렸던 그림들과는 다르게 하무가 혼자 있는 이미지가 아닌 다른 하무들과 어우러져있는 모습을 그림으로서 하무가 타자와의 마주침을 위한 비어있음 즉 조화를 나타내고자 했다. 작가가 초반에 구상했던 하무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유일한 한명의 하무만 존재했다. 하지만 고립에서 벗어나 다른 하무들이 등장해 서로 마주보고 소통하는 모습으로 조화를 표현하고자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하무들이 처음 서로를 마주하는 장면을 그리고자 했다.

다음으로 하무의 탄생설화이다.

작가는 하무가 친근한 캐릭터로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캐릭터에 입체적인 이야기를 부여했다. 그리고 관람자에게 있어 친숙한 인식을 주기위해 하무의 탄생설화를 구상하게 되었다. 작가의 손톱을 뜯는 습관에서 ‘손톱 먹는 쥐’와 ‘난생 설화’를 결합했다. ‘난생 설화’는 알에서 신화적인 존재가 태어난다는 설화로 손톱의 모양이 알과 닮았다고 생각해 이야기를 더하게 되었다. 또한 손톱은 팔이나 다리처럼 성장이 멈추지 않고 잘라고 계속 새로운 손톱이 자라나는 모양새가 마치 기억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가는 손톱에 기억과 망각의 이야기를 담아 탄생설화를 구성하게 되었다. 배경의 시작을 설산으로 지정한 이유는 작가가 처음 하무 를 구상했던 장소가 설산이며 처음 그린 하무 또한 설산이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스토리의 배경이 되는 풍경들은 모두 작가가 오랜 시간 하무를 작업하면서 하무를 배치한 장소를 가져왔다.

하무의 탄생설화의 시작은 이렇다. 밤중에 버려진 손톱을 배고픈 쥐가 발견한다. 쥐는 손톱을 한입을 먹는다. 그런데 갑자기 들리는 큰 소리에 놀란 쥐는 집으로 도망가 잠에 든다. 다음날 눈을 뜬 쥐는 유령이 되어있다. 쥐는 전날 평소와 다른 일을 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평소와 다른 일은 손톱을 먹은 일이라는 것을 떠올린 쥐는 손톱이 있던 자리로 간다. 그러나 이미 손톱은 사라지고 소문을 들어보니 손톱끼리 모여 하나의 ‘손톱 알’이 되었고 그 알을 새 가 가지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손톱 알’에서는 ‘하무’라는 유령이 태어난다는 소문까지 들었다. 그래서 ‘하무가 된 쥐’가 ‘하무’를 찾으러 간다. 그리고 ‘한입 먹힌 손톱에서 태어난 하무’ 또한 비어진 ‘기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 서로 만나는 내용이다.

하무는 처음에는 고립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어린 시절 감추고 싶었던 속마음과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을 차차 극복해나가며 함께 살아가는 내용을 표현한다. 이를 관람자와 공유함으로써 조화를 강조하며 관람자의 공감을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