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관 개인전 Collected Objets
이종관
2019 10/23 – 10/28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이종관표 쓰레기’를 간택하여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는 작품
이종관은 시종일관 무겁고 진중한 예술론을 배반하듯 주변의 버려진 사물을 사용하여 키치적인 작업들을 이어오고 있다. 언뜻 보면 누구나 알기 쉬운 일상의 사물과 상투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하여, 오히려 진부했지만 자칭 세련되고 아이코닉한 ‘이종관 세계’에 어느 누구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 작품이며 그 상투성에 또 ‘왜?’를 묻는 아이러니의 한 장치다.
이종관은 중미 과테말라의 아티틀란 호수에서 수개월 머문 적이 있다. 화산 분화로 생긴 커다란 담수호인데 간간히 호수 주변으로 밀려든 쓰레기로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표현의 단초다. 장기 여행자로 그림 그릴 재료와 도구, 작업장이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주변에서 수집한 쓰레기가 물감이 된 셈이다. 이렇게 주운 쓰레기 오브제들은 하나의 여행의 기록물들이며 나름대로 각각의 사연과 영혼을 간직한 일종의 기념품이다.
이렇게 수년간 모아 온 오브제들은 자신이 집을 떠나 여행을 하며 주워온 것으로 이국의 냄새가 풀풀 나는 민예품 이거나 혹은 주변을 오가며 누군가 의문스럽게 내던져놓은 형형색색의 오브제들이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그 쓰레기들은 자신의 눈에 번쩍 띈 간택된 영혼의 오브제로 둔갑시켜 쓰레기의 삶을 버리고 새 생명의 이미지를 부여한 것이다.
그는 거리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그 장소에서 만난 묘한 파편들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재미와 감흥을 받고 자신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또 낯선 여행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미지의 시간을 경험하고, 그 장소에서 작은 쓰레기들을 줍는 것으로 세상 사는 의미들을 기록한다. 어떤 남루하고 쓸모없을 작은 것에 말을 걸고, 그 하찮은 것에서 삶의 위로를 얻는 이 ‘이종관표 쓰레기 컬렉션’은 오늘 방문한 우리를 살포시 미소 짓게 한다.
김복수 /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사
사물이 사람을 바라보다 : 이종관의 사물들
이종관이 사물들을 펼쳐놓음으로써 관객들에게 묻는다. 가치와 무가치에 대하여,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하여,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에 대하여, 예술과 예술 아닌 것에 대하여. 과거로부터 예술이 안락하게 놓여 있던 안전한 울타리는 예술이 비현실성을 띠게 된 주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우아하고 아름답거나, 고매한 지성이 작동되거나, 혹은 추함조차도 드높은 명분을 위한 희생의 대가로 기능할 때, 예술작품이 현실을 담아낼 힘을 잃는 것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보아 왔다. 이종관이 펼쳐놓은 사물들은 그것이 갤러리라는 안전한 그릇에 담겼다는 점에서 예술의 울타리를 깨부수지는 않지만, 결코 예술적으로 초월하지 않으면서 또한 쉬운 상징의 유혹에 굴복하지도 않으면서, 고요하고 담담하게, 마주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윤희 / Chief Curator, 청주시립미술관
작가노트
몇 해 전 중미 멕시코의 폐 광산에서 전시에 쓸 쓰레기를 줍다가 못된 놈들한테 칼침을 맞고 하마터면 세상을 하직할 뻔했다. 단 몇 초 동안이었고 불과 몇 미리 깊이로 살거나 죽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끝낸 의사한테 물었다. 한국말로 했나 싶다. 저 살 수 있나요?
작년엔 북아프리카의 한 폐 항구에서 또 쓰레기를 주우러 다녔다. 여긴 너른 곳이라서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인다.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검정 옷을 입고 묘하게도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그들도 뭔가를 주워 담았다. 남쪽 아프리카에서 올라온 난민들이었다. 몇 명이 슬슬 내게 접근해오는 걸 알고는 그 장소를 벗어나야 했다. 그러고는 다시는 해변에 나가지 않았다. 거기에는 지중해 바닷물에 밀려온 괜찮은 쓰레기들이 많았을 텐데 말이다. 이번엔 주로 시장을 쏴 다녔으나 주울 만한 쓰레기가 많이 없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게 스카프였다. 시장바닥에 늘어놓고 파는 세컨핸드 물건인데도 강렬한 햇볕에 매우 화려하게 보이는 실크천에서 고단하게 사는 아프리카 여인들의 땀냄새가 났다. 옳지 이거 좋다. 몇 달에 걸쳐 4~500장을 모았다.
이번 전시는 각국에서 수집해 온 쓰레기 사물 작업에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실크스카프와 버려진 종이박스를 활용한 작업이 주다. 그리고 이십여 년 전부터 여행 다니면서 틈틈이 수집한 흔치 않은 물건들도 함께 내보인다.
이종관 201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