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범 개인전 "흔적(Trace-Behind)"
이재범
2022 01/19 – 01/24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이재범- 작가노트
나의 작업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을 재현하거나 그것에 내제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데 있지 않다. 내 작업에서 보여 지는 모든 형상들은 일체의 재현적인 요소를 제거한 채 남겨져있는 흔적들에 관한 숭고함의 표현이다. 그곳엔 하나의 물질이 규정할 수 있는 대상에서 벗어나 오랜 세월을 거쳐 마모되고 흐트러지지는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모호함과 진행형의 모습이 있다. 이 모호한 세계는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현상 세계와 그 너머의 세계를 연결하는 마지막 모습 일지도 모르겠다.
내 작업에서 보여 지는 모든 형상들은 의식적 사고를 통해 내가 만들어낸 창작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태초에 있던 어떠한 형상들이 나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위빙(직조)의 무한한 반복적 행위는 이와 같은 형상들을 만나고 체험하기 위한 독백과 묵상의 과정이다. 그것은 이미 만들어진 2차원의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바르는 행위를 통해 일루젼(illusion)을 구현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하나의 실이 켜켜이 쌓여서 누에고치가 만들어지듯이 한 줄 한 줄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서 2차원의 평면을 쌓아가는 의식과 무의식의 반복적 체험의 과정이다. 내 작업에서 보여 지는 엮고, 염색하고, 꿰매고, 칠하는 과정들 또한 이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들이다.
나는 오늘도 내 안에 감추어있는 매혹 같은 형상들을 만나기 위해 직조를 한다. 그것이 또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어제의 생각들이 모여 오늘의 실을 만들고 나는 내일을 직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