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옥 개인전 A piece of happiness

이미옥
2019 08/14 – 08/19
2 전시장 (2F)

이미옥 개인전 평문

맛있는 케이크, 행복의 시간

허나영(미술비평)

어떤 음식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소울 푸드가 그럴 것이고, 요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도 자주 접하게 되는 먹방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 그건 행복을 준다. 모든 음식이 다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하나쯤은 생각만 해도 빙긋이 미소가 지어지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 이미옥에게는 딸 앨리스가 만든 케이크가 그러한 행복을 주는 매개이다.

 

케이크에 담긴 기억과 감정

이미옥은 그림을 그리는 틈틈이 케이크 가게를 여는 앨리스를 도왔다. 앨리스는 어릴 적부터 곧잘 엄마 옆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던 딸이었다. 그래서 모녀는 함께 쿠키를 만들고 빵을 만들던 즐거운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던 딸이 어느덧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케이크를 만들고, 그 케이크를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한 가게를 열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어머니이자 보조 파티셰로 함께 한 이미옥에게 케이크는 그저 달콤한 음식 이상의 것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딸과 함께 만들어온 시간이 케이크에 함께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케이크를 함께 맛보고 배열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바탕에는 아마도 케이크의 달콤함처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미옥은 개인적 기억과 감정을 담은 케이크를 그림으로 한 번 더 표현하였다. 행복의 순간을 사진으로 찍듯, 그림에 담긴 케이크의 모습에는 자연스럽게 작가의 기억과 감정이 녹아들어간다.

삶이란 실제 선형적인 시간이 아니라,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이 말하듯 과거의 시점들이 소용돌이치듯 현재와 함께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비선형적 시간성은 예술에서 더욱 쉽게 드러나는데, 이미옥의 그림에서도 딸과의 기억과 현재 만들어지는 케이크의 맛이 그림에서 한 번에 담기게 되는 것이다. 다만 아직은 그러한 복합적인 감정이 그림에 명확히 드러나진 않는다. 작가 개인이 가진 감정이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표현으로 다 담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케이크라는 매개를 통하여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그리고자 한 작가의 생각을 상상해볼 수 있다. 각기 다른 맛을 가진 케이크를 하나하나 그리고 묘사하면서 나타내는 애정을 통해서 말이다.

자세히 보면 모든 케이크들의 종류가 각기 다르다. 얼그레이가 들어간 쉬폰 케이크, 딸기가 듬뿍 얹어진 타르트, 진한 치즈가 들어간 치즈 케이크, 자몽이 꽃처럼 들어간 케이크 등, 이토록 다양한 케이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 호강이다. 이 중 작가는 자신의 생일을 위하여 딸이 특별히 만들어준 단호박 케이크를 최고로 꼽았다. 그러면서 다른 케이크들에 대한 설명도 애정가득 담아 설명한다. 그러면서 마치 이 케이크들이 손주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딸이 만든 자식과도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딸의 작품을 사랑스러운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림에 담았다.

 

감정이 담긴 주변의 사물들

얼마 전 한 소설가가 자신은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고 그 감정을 기억해서 쓴다고 한다. 어쩌면 소설가 뿐 아니라 예술가라면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저 일상에서 스치듯 지나칠 법한 것들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고 이를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특히 화가는 주변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그림으로 시각화한다. 어떤 화가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을 추상적인 선으로 시각화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거대한 자연에서 느껴지는 숭고함을 풍경화를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이토록 거대한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통해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이 동시대미술의 경향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주제보다는 주변의 작은 소서사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 말이다.

이러한 소서사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도 한다. 작가가 느꼈던 바를 보는 이 역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옥은 케이크를 그리기 전부터 주변의 사물들을 주로 그렸다. 어찌보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화가가 주변의 사물을 선택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개인적 이야기가 담길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저 사진을 찍는 것과 또 다른 감정과 이야기를 그림 속에 담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미국 팝아트 작가 웨인 티보(Wayne Thiebaud, 1920-)가 그린 케이크 그림과 다른 점이라고 이미옥 작가는 자신 있게 말한다.

단색의 배경에 밝은 색의 케이크가 그려진 그림의 구성은 언뜻 웨인 티보의 작품과 유사하다. 하지만 웨인 티보가 케이크 이미지 이면에 다른 감정이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 것에 반하여 이미옥은 딸이 만든 케이크라는 작은 이야기와 감정을 담고 있다.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차이를 작가가 인지하고 있으니, 이후 더 따듯하고 행복의 감정이 담긴 케이크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작가가 작품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붙였듯이 말이다.

소확행이라 하지 않는가. 요즘의 화두 말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환경문제, 실업문제, 경제문제 등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요즈음 무력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무기력함을 없애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소확행이다. 먼저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며, 행복을 주고 의미를 주는 것들을 찾아 즐기는 시간이 누구에게든 필요하다. 이미옥의 케이크 그림 역시 보는 이들에게 그러한 소확행을 선사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를 보며 무엇보다 눈이 즐겁다. 그리고 마치 진열대의 케이크처럼, 각기 만들어진 재료를 생각해보며 맛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내가 예전에 먹었던 케이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 때 함께 했던 친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케이크가 놓여있던 테이블, 카페의 분위기, 함께 마시던 커피의 향과 그 카페로 가던 길에 본 꽃 등 모든 기억이 한 번에 되살아날 지도 모른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가 그의 소설에서 묘사하는 ‘마들렌’의 기억처럼 말이다.

작가가 선택하고 그린 케이크이지만, 그 그림에서 자신의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만큼 그림 속 케이크는 보는 이의 것이 된다. 그렇게 화가와 관객은 그림을 통해 소통하게 된다. 이러한 소통은 늦깎이 화가로 데뷔를 한 작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 늦은 시작도 빠른 마감도 없다. 예술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작가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 이미옥이 앞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