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휘 개인전 봄날의 인연
이금휘
2024 03/06 – 03/11
2 전시장 (2F)
봄날의 인연
‘인연’이라는 두 글자에 사랑을 담아 봅니다.
살면서 찾아 오는 수 많은 관계속에서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나의 미래에도 소중한 인연이 생겼습니다.
사랑으로 품었던 소중한 생명이 세상밖으로 나와 나의 두팔에 안겼으니까요.
이렇게 저는 엄마’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되었답니다.
처음 소통의 시작이어서 였을까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아픔과 슬픔 마저 꽁꽁 숨겨 작품에 담아왔던 나의 국화도
이제는 다른 이름으로 세상과 마주하려 합니다.
새로운 시작 시점에서 나의 작품을 사랑하고 기대해주는
고마운 ‘인연’을 만나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열정, 행복, 도약, 감사‘ 라는 의미를 담아 새로이 바라보는 또 다른 너의 이름, 달리아..
형태적 시각에서 내적 마음의 시선으로 다시금 작품과 소통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은 전시
꽃피는 봄날,
우리 함께 좋은 인연을 맺어 볼까요..^^
- 2.
‘봄날의 인연’ 전시를 준비하며
자신을 되돌아 보는 대상을 그려간다는 것에 관하여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만남을 갖게 된다. 그 만남은 우연적일 경우도 있고 필연적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우연적인 만남이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이 필연적인 것이었음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이는 사람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물이나 어떤 대상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이금휘 작가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국화는 그런 대상이었다. 사실 그의 삶에서 처음 국화라는 대상을 만나게 된 것은 가족의 장례식장이었기에 국화는 두려움으로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가 작업을 하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국화꽃은 작은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든 작은 우주이자 그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작가는 이처럼 국화를 만나게 된 것에 대해 “내가 국화를 선택한 것인지 국화에 의해 내가 선택 당한 것인지”라고 말하였다. 또 “꽃 향기에 이끌려 나비가 찾아 온 것인 듯 이제는 그 경계 자체가 무의미해져 간다”라고도 하였다.
작가는 작업을 하면서 사람을 대하듯 국화 꽃과 많은 대화를 하며 그 꽃을 그려나가고 있다. 그것은 국화 꽃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하나의 대상으로 마주하여 눈으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는 작업하는 동안 국화 꽃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내려놓고 홀로서는 것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국화는 아름답고 탐스러운 꽃송이의 탄생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였지만 동시에 그 화려했던 꽃송이가 소멸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꽃이 떨어져나간 장소에서 또 다시 새로운 꽃이 피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가운데 신비한 생명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발견하게 되면서 그 국화꽃이라는 대상은 작은 식물이었지만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되돌아 보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금휘 작가에게 있어서 국화꽃은 단순한 그림의 소재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고찰하는 장소이자 작가 자신을 되돌아 보는 장소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그의 작업이 국화꽃이라는 대상에 사실적인 표현을 하고 있지만 화면 전체는 추상적이며 명상적인 공간을 함유하고 있는 것은 그가 그려내고자 한 것이 단순히 꽃의 외형이 아니라 꽃을 만나고 난 후 떠오르게 된 많은 생각과 감각하게 된 많은 느낌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결국 작업하는 과정에서 국화를 통해 인간의 삶과 세상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며 국화와 대화하면서 자신을 거울을 보듯 다시 되돌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창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어 이제 작업의 중심에서 모호했던 세계를 읽어가게 만들기도 하고 감춰져 있던 자신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는 국화를 그려내고 있지만 그의 작업은 국화뿐만 아니라 작가가 국화를 통해 느끼게 된 세상과 우주, 혹은 인간의 삶과 같은 영역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구체적 형태를 띤 것이 아닌 우주의 섭리나 인간의 욕망처럼 비형상적인 것일 수 있는데 작가는 이를 꽃과 나비의 관계에서, 그리고 마음의 무늬를 그려낸 것 같은 추상적 공간에서 이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요즘 그의 작업을 집중해나가는 가운데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그의 작업에서 듣게 된다고 한다. 어느새 그의 작업은 거울처럼 자신을 되돌아보는 장치이자 메아리처럼 자신의 음성을 다시 음미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만일 진지하게 그의 그림을 읽어가고자 하고 감각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고, 자신의 음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그려낸 것은 국화꽃을 통해 보게 된 세상과 인간의 형상 너머의 세계이며 거울처럼 메아리처럼 반영되는 세계이자 이미지로서의 시각 장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러한 세계를 그려내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질문하며 작업을 해오고 있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