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뢰 개인전 득의망상

이광뢰
2020 12/16 – 12/21
3 전시장 (3F)

예술의 韻味가 넘실대는 創意에서 헤엄치다

-이광뢰작품집 서문-

좡다오징(莊道靜, 중국국가1급미술사, 중국 중앙미술학원객좌교수)

청나라 문학가 정판교는 “대나무 줄기 하나 둘 셋, 대나무 잎 넷 다섯 여섯이 자연스레 담담하게 드문드문한데 무엇하러 층층이 겹치는가”라는 시를 지었다.이것은 바로 간결함과 평담함 속에 숨겨진 예술적 매력이다. 담담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서 ‘의운(意韻)’을 느낄 수가 있다. 당시는 허에 대한 표현이 뛰어나고 송시는 실에 대한 묘사가 절묘한데, 이 허와 실이 한데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운(韻)이 흘러나온다. 예술 창작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허와 실을 통해서 자연 물상의 고유한 특징을 나타냄으로써 화면의 대비를 살리고 시각적인 리듬이 활약하게 된다. 강렬한 시각적인 미감과 화면이 만든 ‘운미(韻味)’를 느끼는 것은 그야말로 대상무형(大象無形)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운(韻)’에 대해 최초로 설명해 놓았던 『설문해자』를 보면 ‘운’의 본 의미는 듣기에 좋은 소리라는 뜻으로 음악에서 다루는 심미적 특성 중 하나이다. ‘운’은 중국 고대에는 시사(詩詞)의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였고, 현대 중국어에서는 정취, 의미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나중에 회화에서 언급했던 ‘운’은 대개 화면이 자아내는 음악적인 리듬감을 지닌 정취나 의경을 가리켰다. 남제시기 사혁은 『고화품록』에서 ‘육법론’을 제기하면서 ‘기운생동’을 첫번째 법칙으로 내세웠다. 이는 예술창작은 우주 만물의 기세와 정신을 생생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며 생명력과 전달력을 지닌 미학의 경지를 지향한다. 당나라 장언원은 『역대명화기』에서 “기운이 충만하지 않은데 형사만 늘어놓고 필력이 굳세지 못한데 부채에만 능하면 비묘(非妙)라고 이르노라.”라 했으니, ‘운’은 하나의 정신 상태이며 그림의 영혼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예술의 신운은 사람의 정신과도 같다. 이를 겉으로 드러내려면 반드시 외적인 형태와 내적인 사상을 갖춘 다음 물경(物境), 정경(情境), 시경(詩境)을 하나로 통합하여 예술의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 수 있어야 한다.     

이광뢰의 작품은 신선한 소재를 신선하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운미가 충만한 화면을 보여준다. 소재의 선정이나 구도, 조형 등을 불문하고 특유의 이미지와 정취를 이용해서 ‘운미’가 넘실대는 무한한 상상의 공간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인물화, 풍경화, 그리고 단선소품 등 어느 작품에서든 자신의 참된 느낌과 시각을 화면의 ‘운미’에 고스란히 담았다. 참됨은 예술창작의 근본이요, 참은 곧 예술이다. 그리고 예술은 생활을 대하는 태도와 생활 속 발견에서 비롯되며 사물에 대한 이성적인 축약과 귀납에서 유래한다. 이광뢰는 바로 이러한 참된 성정으로 화면의 ‘운미’를 만들고 시각예술의 생명력과 전달력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녀는 중국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 <나희(儺戲)>, 그리고 24절기의 춘분, 대서, 한로, 대설 등을 그린 작품, 그리고 단선소품 등을 창작할 때 사람과 사물, 산과 물, 꽃과 잎사귀에 이르기 까지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기울여서 담아한 운미를 촘촘하게 새겨 넣었다. 감상자는 작품을 보면서 예술미를 향유하고 영혼의 힐링을 받는다. 

그녀는 최근 몇 년 간에는 한국의 미술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한국의 문화예술을 접했다. 이광뢰가 구사하는 예술언어 형식이나 독특한 심미는 화면의 ‘운’에서 더욱 현격하게 드러난다. 한편 한국화에서는 자연 풍경과 공간, 색감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작품에 주체가 되는 인물이 있더라도 화면의 환경이나 색채보다는 중요도가 떨어진다. 이처럼 인문학적인 자연생태를 중요시하는 표현 방식과 심미관이 그녀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나희>에서는 인물들이 다투고 있는 모습 뒤로 커다란 공백이 남겨져 있고 한 켠에는 산수의 운기가 서려 있어 시각적인 공간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적인 색채로 가득하다. 그리고 중국 전통회화에서 운용하는 평면 조형의 미학에 한국화의 풍격을 더했다. 그녀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밝은 회색을 이용한 설색을 비롯해서 화면의 구도와 조형, 부채 등을 통해 작품의 주제의식을 드러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에는 낭만적인 무드와 운미가 물들어 있고, 검은색과 밝은 회색의 명암 대비와 냉온 대비는 신비로우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더욱 중요한 건 그녀가 양국의 문화를 융합한 데다가 자신의 심미관까지 더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학식과 소양을 쌓으면서 회화 이외의 주변 공부를 익히며 대상이 되는 물상의 외형과 내재된 정신을 축약하고 통합함으로써 화면에 ‘운미’가 담긴 독특한 예술언어를 풀어내고자 한다.

청나라 때 포안도(布顏圖)는 “산천이 머무르는 곳은 형이요, 산천을 알아주는 마음은 신이니라.” 여기서의 ‘신’은 ‘이형사신’과 같은 의미로 신운의 묘사가 핵심적인데, 이는 예술의 최고 경지이기도 하다. 그녀는 사물에 대한 조형 설계나 화면을 배치하는 데 있어서 항상 전체적인 느낌을 중요시한다. 간결함 속에 큰 기운을 담고 간단하면서도 풍부한 ‘운미’를 추구하는 그녀는 ‘이형사신’을 표방하는 중국화 심미의 핵심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난 곡선과 직선, 성김과 빽빽함, 정적인 표현과 동적인 표현 등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각의 대비를 보여준다. 화면 곳곳에 작가의 고심과 심미적인 정취가 담겨있다. 그녀는 구, 염, 도, 입 등 단순한 기법만으로 물상의 형신과 의취를 드러내고, 화면에 질감, 부피감, 깊이, 공간감 등 시각적인 형식미를 연출해내어 감상자에게 다양한 ‘운미’를 느끼게 한다. 섬세하고 부드럽고 다채로운 ‘시각의 맛’을 내는 이 ‘운’은 그윽한 술을 음미할 때처럼 잔잔하게 긴 여운을 남긴다.       

예술창작의 독창성은 작가의 상상과 심미에 달렸으며, 전통문화 심미의 핵심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화 정신과 내용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이광뢰는 이러한 점에서 매우 탁월한 데다가 외래문화의 정수를 더함으로써 그녀의 작품과 그녀의 예술언어에 독특한 매력을 보강했다. 예술의 운미가 넘실대는 창의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언제나 이를 즐기고 끊임없이 정진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