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국 개인전 산의 울림(ECHO OF MOUNTAIN)
신현국
2021 09/29 – 10/04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갤러리 아트플라자 기획초대전>
산을 향한 생명의 노래를 가슴으로 담아 낸 정열의 화가
장 준석(미술평론가, 문학박사)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옛 백제의 도읍지 공주에 자리한 계룡산자락에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청량한 초가을 하늘 아래 아직은 푸른빛을 간직하고 있는 초목들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의 가을 이야기는 금강의 줄기와 더불어 더욱 깊은 맛을 자아낸다. 이러한 아름다운 공주의 산야가 화가 신현국의 화폭에선 더욱 운치 있게 형상화된다.
공주 계룡산 갑사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큰 스케일과 열정의 작업들, 특히 산에 대한 남다른 조형력을 볼 수 있다. 그의 산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이 남다름은 계룡산을 중심으로 그려내는 산의 정기와 같은 힘으로서, 오랜 동안 몸소 체험하여 이제는 하루의 일상이 되어버린 계룡산의 조형적인 형상화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각고의 노력 및 열정으로 형상화된 것이라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여느 작가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산을 통하여 색다른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계룡산을 통해 드러나는 신현국만의 독특한 조형미에는,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며 표출해낸 산에 대한 관조로부터 비롯된 미적 상상력이 담겨져 있다. 그러기에 작가의 산 그림은 독특하고 깊이가 있다.
이렇듯 늘 산과 더불어 조응하며 산과 더불어 숨 쉬는 듯한 작가의 작업에는 다채로움뿐만 아니라 민요의 가락과도 같은 정겨운 흥이 넘친다. 그리고 이 흥은 타고난 감성적인 끼라고 생각되리만큼 자유롭고 담박하다. 그만큼 필자가 본 신현국은 예술적 감흥이 농후하며 독특한 미적 조형 능력을 지닌 작가이다. 이는 아마도 남다른 조형적 힘을 지닌 작가의 노력과 창작 열의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러한 면은 그의 작품 양에서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작품이 주로 대작인지라 쉽게 그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양이 적지 않은 작가인 것이다. 그의 작품 수를 보면, 그의 하루 일과가 그림 그리는 일로 시작하여 그림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신현국은 계룡산에 들어와서 삼십여 년 넘게 은둔하다시피 그림만을 그리고 있다. 때로는 강렬한 색감으로, 때로는 묻혀있는 산의 흔적을 파헤치듯,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크고 작은 터치의 흔적들을 서로 순환시켜가며 말이다. 이 순환은 곧 그의 심장에서 드러나는 감성의 표출이자 산을 향한 생명의 노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철저함과 자유로움이 공존함은 물론이다. 이는 산의 본성 및 내재된 산의 응어리를 직시하고, 그것과 거짓 없이 함께 조응하면서 이루어지는 어떤 절대적인 기운이다. 이 기운은 곧 산과 자연의 본질로서, 작가의 관조 속에서 드러나는 계룡산의 실체이자 생명이라 하겠다. 이는 더 나아가 그만이 이룩해낸 생명의 아름다움이자 산의 순수함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세계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산에 대한 예술적 접근이 명료하며 창작의 근원이 확실하고 독자적이다. 자연과 산수화 및 풍경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단순하게 섭렵하는 조형 예술이 아닌, 내면으로부터 거짓 없이 드러나며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산의 본성과 관련된 조형성을 구현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산과 함께 호흡하고 이들을 미적 사색과 조형력으로 조망해보며 이들이 지닌 실체를 마음에 품어 새로운 예술적 감흥을 얻고자 한다. 이 감흥은 물론 산에 동화되어 표출된 것으로서, 산에 대한 진지한 체험과 사색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 체험과 사색은 산의 본성에 대한 의식적·무의식적인 관조를 통해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미적 조응력으로서, 조형적인 응집력의 압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체험으로, 작가 자신이 그만큼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신현국의 산은 어찌 보면 무형상적인 듯하면서도 산의 다채로움처럼 밀도가 있으며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힘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산의 모든 것을 압축한 듯한 절제된 색과 형의 이미지 및 선묘의 힘이 저변에 흐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에는 투박함과 자유분방함 및 진실함과 강한 힘 등이 담겨있다. 산의 정기와 본질에 대한 조형적 소통이 작가와 하나가 되면서 더욱 완벽에 가까운 군더더기 없는 하나의 수준 높은 산이라는 조형으로 표출되어 자연적인 형상과 색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에는 대단히 섬세한 감각과 예민한 조형성이 내재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작가의 산 그림은 여느 작가의 그것보다도 진지하며 순수하기에 마치 산의 본성을 체험한 듯하면서도 은근하며 깊은 맛을 지닌다. 또한 추상적인 듯하면서도 추상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하며, 새로운 차원의 산세를 펼쳐내는 듯한 기묘함을 담고 있다. 그의 산 그림은 산의 형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실재하는 산의 생명의 숨결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차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면들은 그가 삼십여 년 넘게 심혈을 기울여왔던 조형세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산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하나의 혈맥처럼 압축한 산의 조형이 부지불식중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때로는 단순한 붓놀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조형적인 예리함과 투박함이 꿈틀거리면서 봄 산이 되고, 여름 산 혹은 가을 산, 겨울 산이 되어 우리들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이처럼 신현국은 산과 호흡하고 산에 동화되며, 거기에서 비롯된 일련의 현상들에 대해 사색하면서, 평소 생각해오던 산에 대한 심경을 욕심 없는 마음으로 가감 없이 정직하게 형상화해 왔다. 산의 형상들과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고, 낮은 마음과 겸허함으로 이들과 함께 소통하며, 자신만의 산의 조형을 표현해온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모습은 평범한 듯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으며, 우연에서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기에 그의 산 그림은 부드러우면서도 산이라는 이미지를 바로 느끼게 해주며, 자유로우면서도 아름답고, 질박하면서도 어머니의 고향처럼 감동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단순히 산을 그리기보다는, 산을 통해 자연의 본성을 다루는 소중한 체험을 형상화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는 무의미한 붓의 흔적들이 잔존하는 것 같지만 어느 산의 형상보다 더 구체적인 형상성을 지닌,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무게가 실려져 있다. 이 아름다움은 산의 정기와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미적 힘으로서, 자연의 생명력과 조우하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작가는 계룡산에 동화되면서부터, 보다 진지한 삶의 과정을 통해 한국적인 산의 조형과 사유에 더욱 몰입하게 된 듯하다. 또한 자연과 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인간과 자연의 질서를 체득하게 된 것 같다. 이 체득은 곧 번득이는 어떤 것으로서, 미적 영감이나 혹은 무아경의 조형력을 발산시키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 원동력이 기운의 혼돈보다 더 압축된 듯한 폭발적인 산의 이미지들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그의 산 그림에는 자유로움이 흐르고 신비감이 내재되어 있다. 여기에 가공할만한 색과 형 그리고 빛과 어둠이 한데 어우러지며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자연의 형상과 이미지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치 색분해를 이루듯 가해지는 여러 상황들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은 시각적으로 독특한 현상으로서, 깊이 있고 다양한 색과 형의 변화 속에서 드러난다. 이는 바로 작가 신현국만의 독특한 산을 조형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다양한 색상의 하모니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양한 산의 이미지들이 각기 다른 밀도를 지니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이 미적 하모니는 어느 순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면 작업의 조형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기에 그의 작업은 언뜻 보아 평면의 평범한 작업처럼 보이면서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상야릇한 힘을 담고 있다. 이 힘은 무중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다채롭기도 하며 마치 안개가 서려있는 것 같기도 한 산의 조형성이다. 이는 많은 사색의 시간뿐만 아니라 산과의 많은 대화와 소통의 시간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산이라는 공간과 형상의 이미지를 담아내기 위한 체험과 사색의 시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 어느 순간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면 멋진 산의 향기가 스며있는 자연스러운 색 층이, 화면에 투박하지만 견고하게 다져지는 것이다.
이처럼 신현국의 작업은 자연과 산의 속성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우리의 정서와 부합되는 다양한 산의 조형뿐만 아니라 자연을 움직이는 힘을 실은 은유적 모노크롬의 성향 또한 엿보인다. 그것은 산에 대한 체험과 사색으로부터 비롯된 조형 행위 그 자체에서 발생되는 자연스러운 산의 기운이자 또 하나의 현상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