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경 개인전 동물 같은 꽃, 지극한 감정

송보경
2022 07/06 – 07/11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동물 같은 꽃, 지극한 감정

   김최은영(동양미학)

동물 같은 꽃.

 송보경의 두 번째 전시를 간단하게 보여주는 대표 명제는 단연코 색이다. 색이 모여 면을 이루고 면들은 빠른 속도의 붓질을 통해 운동성을 부여받은 선으로 거침없이 공간을 나누고 합치기를 반복한다. 화면은 조화롭게 아름답지만 고요하지 않다. 자연의 색을 취했고 자연의 꽃과 숲의 형상을 그렸으나 일반적인 꽃, 숲의 통념 즉 식물성이 주는 수동적, 수평적, 정적이라는 일반론을 깨버린다.

 화면에 내리꽂듯 붉은 색은 던져졌고 줄기와 잎은 생존을 위해 꿈틀 된다. 이때 작가는 주로 짧은 선을 사용하여 빠른 반복으로 화면을 메꿔나간 듯 보인다. 붉은색 붓을 휘둘렀다가 다시 푸른 붓으로 바꾸는 송보경의 손과 호흡에는 긴장감이 역력하고 이는 화면에 고스란히 담긴
다. 움직이는 꽃, 동물 같은 꽃이다. 푸른 숲의 움직임은 꽃과는 다르다. 작가의 시선이 풀이 아닌 풀과 풀의 관계항, 풀과 풀 사
이의 공간인 숲까지도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풀을 그린 것이 아닌 그 풀의 생존 공간, 즉 풀의 우주인 숲의 초상에 닿아있다. 뜨거운 생명성이 긴 잎을 가진 풀의 실존에서 전해진다. 꽃에 비해 길게 사용된 선은 머뭇거리거나 주저함이 없다.

단숨에 그려진 듯 보이는 일련의 시리즈 작품들은 또 다른 이면을 갖고 있다. 회화 표면 아래 수없이 쌓인 다른 붓질들은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회화의 골격을 이루며 견고하고 치열한 화면이었음을 증명해낸다. 선택적 시각으로 잡아낸 꽃과 숲의 실존을 삶의 굴레처럼 반복적으로, 그러나 매번 다른 붓질로 견고하게 쌓아올렸다. 그래서 송보경의 꽃과 숲은 고요하지 않고 치열하며 아름답지만 다소곳하지 않다. 멈춰서 반추하는 삶의 끝자락이 아닌 전쟁 같은 삶의 한복판에 서 있는 동물 같은 꽃이다.

지극한 감정(情至)

 감정이 지극한 말(情至之言)은 저절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진짜 시(眞詩)로서 전할 만하다.-원굉도(袁宏道)
중국 명나라 문인인 원굉도는 진정한 창작에 대해 지극한 감정(情至)을 제대로 표현할 것을 강조한다. 창작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진정성 있게 다한다는 것은 얼핏 들으면 당연한 말인듯하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어떤 하나를 원칙으로 삼아 그것을 모의하는 식으로 작품창작에 임하고 있는 태도들이 있고, 원굉도는 이런 몰주체적인 작품창작 태도를 비판하면서 가슴에서 나오는 대로 내쏟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의 진정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1)송보경의 창작태도는 감정이 지극(情至)하다.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고 그 마음의 변화에 따라 느낌 감정 그대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이 미술계 내에서 어떤 긍정 혹은 부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올 것인가 하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거침없는 색으로 동물 같은 꽃을 그릴 때 계산은 없었다. 작가가 목격한 그것, 혹은 자신의 내면 사유에 집중하며 포착된 진동을 화면위로 던진 것이다.

 사실 송보경의 정지(情至)한 마음은 더 큰 범주를 갖는다. 만다라(曼茶羅, Mandala). 모든 법을 원만하게 갖추어 결함이 없는 것을 뜻하는 불교용어인 동시에 불화의 한 종류다. 송보경이 구현한 꽃과 숲, 추상회화와 실험들은 어쩌면 만다라를 향해 가는 수행의 모습일 수도 있다. 결함 없는 완성형의 만다라가 아닌 본질(Manda)이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변하는(la) 과정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전개된 신앙형태를 통일하면서 단순히 다신교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어떤 원리로 통일되면서도 다양하게 전개되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불화로서 만다라처럼2) 송보경의 회화에는 본질의 우주가 있고 변화는 마음이 있으며 그것을 목격했지만 재단하지 않고 정직하게 표현했다.

 때문에 송보경의 만다라에는 불(火)같은 꽃이 있고 원시림(地) 같은 숲이 있으며, 얼음(水)같이 단호한 붓질이 있고 원만한(風) 화합의 공간(空)이 있다.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만물이 생겨나는 다섯 가지 원소를 그림으로 풀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붉고 푸른색들은 살아있는 원소를 상징하며 살아있기 때문에 경직되지 않고 유연한 곡선으로 리듬감을갖는다. 또한 자연의 색 그대로지만 만물의 근본인 힘이 내재되어 있기에 적극적 운동성을 띤다. 그러나 각각의 다른 성질들은 서로 충돌하고 화합하기를 반복하며 실존의 무엇이 될 것이기 때문에 화면은 부드럽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송보경의 작품이 거침없고 자유로운 것은 법(法)을 부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정말 글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문학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가슴속에
차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괴이한 일들이 무수히 고여있고, 그의 목구멍 사이에는
토해내고 싶지만 감히 토해낼 수 없는 것이 많이 걸려 있고, 입에는 또 수시로 말
하고 싶지만 전달할 수 없는 것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오랜 세월 쌓이면 그 형세
를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다. – 이지(李贄)3)

또 한 명의 명나라 사상가 이지(李贄) 역시 진실된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일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이 글을 빌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형세의 작가 송보경에 대한 글의 마무리를 대신한다.


1) 조민환, 『동양의 광기와 예술』,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20. 참조

2) 만다라 [曼茶羅]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3) 李贄, 『焚書』, 「雜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