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숙 개인전 피우리라

손경숙
2024 06/26 – 07/02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뒤돌아보니 땅속 깊은 곳에서 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싹을 틔우기 위해 움츠리고 있었을까?

나와의 싸움에서 놓아버린 자아를 다시 찾기 위함일까?

나를 일으키기 위해 몰두했던 건 작업이었다

.

한지로 작업을 하던 나는 우연히 한지를 꼬아 만든 매듭을 발견한다.

염색한 한지를 찢어보고, 꼬아보고, 매듭을 지으며 나열해 보는 과정에서 움추린 나는 보이지 않는다.

한지를 꼬아 매듭을 짓는 행위에 빠져 들다보니 그 속에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매듭을 짓고 붙이는 반복된 행위는 손가락이 아리고 눈을 어지럽히지만,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사를 잊게 해준다. 이는 또 다른 창작의 쾌감으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매듭 하나하나 이어 붙여 나만의 세상을 만든다.

그 세상 속에는 오롯이 나와 매듭 뿐이다.

 

평면의 화폭에 정신없이 매듭을 짓고 무작위로 붙이는 행위를 반복하다 색을 통해 자연을 만나고, 계절을 그리고, 마음을 표현하게 된다. 그러다 화면 속에서 작은 원이 그려지고, 점점 더 큰 원이 그려지는 화면을 발견한다. 길 잃은 세상사를 잊기 위해 반복된 나의 행위 속 원의 발견은 호기심이고 즐거운 모험이다.

그렇게 칠순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무작위로 마주한 매듭이 원의 형태로 발현되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그려진다.

매듭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원의 모양이 달라지고, 원의 생김새마다 가지는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사처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수많은 색색의 매듭으로 발현된 원은 평면 속 화면을 뚫고 내 가슴으로 들어와 진동한다.

매듭을 통해 발견된 원의 우연성은 내면의 용솟음이요, 생동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하나의 작은 매듭들이 모여 작은 원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모여 큰 원이 되어 내 깊은 내면의 변화와 움직임, 그리고 삶의 용기를 주었다.

 

길 잃은 내게 매듭은, 매듭을 통해 발현된 원은

화폭 위에 사라지지 않고 하나, 둘 정성스레 쌓여 작은 매듭 하나하나가 살아온 세월과 남은 세월을 그려준다. 그리고 긴 겨울을 보내고 있던 내게 다시 꽃 피울 수 있게 용기를 준다.

오늘도 나는 매듭을 만나 예술가로서 내 삶을 꽃 피우며, 새로운 도전과 꿈을 응원하는 자전적 전시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