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은 개인전 갤러리 인사아트 기획전
박소은
2021 09/22 – 09/27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박소은-조화로 소통하는 相生의 세계
장정란(미술사.문학박사)
박소은의 작품세계는 조화(調和)와 소통의 탐색작업이다. 세상과 조화의 방식으로 만남을 추구한다. 和의 개념은 동양미학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경계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유가미학에서는 사람과 사람들의 조화인 人和를, 도가미학에서는 사람과 자연의 조화인 天和를 최상의 관계로 여긴다.
박소은의 和의 세계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탐구되면서 자신만의 미학을 도출하는데 相生으로의 和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여정은 소통이라는 창구를 통하여 모색되며 4단계의 치열한 정경으로 화면에 드러난다.
우선 첫 번째 단계는 나와 나의 소통이다. 나의 이상과 에고와 욕망과의 적절한 조화를 꿈꾼다. 전시 작품 중에 〈방〉 시리즈로, 주로 방안에 있는 여성인물과 실내 물건들이 등장하는 그림들이다. 닫힌 공간인 나만의 방은 작가 자신의 에고를 상징하는 것이며 아름다운 장식장이나 화려한 샹들리에는 세상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다.
장식장 안에는 다양한 책들이 도열해 있고 그 위에는 화사한 꽃들이 꽂혀 있는 화병이 있다. 예쁜 한복을 입은 여성은 작가 자신의 투영일 것이며 전체적으로 화면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한복 상의는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되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한편 화려한 정물들은 소유할 수 없는 욕망의 표상이기도 하다.
인물은 조용히 앉아있고 정물들은 그 자체로 화려하게 존재한다. 각자의 존재성이 다르게 드러난다. 아직 소극적인 和의 소통이다. 주목되는 것은 방 시리즈 중 한 작품은 여성인물이 계단이 있는 출입구에 서있는 그림이다. 자신의 에고에서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응시〉 시리즈로 나와 우주와의 소통을 보여준다. 대부분 산수가 화면의 메인으로 등장하며 여성 인물은 한쪽 구석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그림들이다. 산을 보거나 달을 바라보거나 웅장하게 펼쳐진 산수의 능선들을 바라보는 정경들이다. 여성인물의 의상들은 <방> 시리즈보다 단색으로 소박해졌다. 자신의 에고의 방에서 나와 우주자연과 소통을 통해 和의 경지로 가고자하는 표상이다. 마치 산이 거대한 머리 수건을 쓴 듯한 그림도 있다. 바라보는 단계를 지나 적극적인 소통을 모색하는 태도이다. 산수는 단지 우주자연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것들의 표정일 것이다. 산수는 우주의 웅장함, 무한함, 자연순환의 이치를 담고 있는 상징일 것이고 그 체계 속에서 현실을 인식하고자 하는 인물의 응시는 서로 존중하고 조화하려는 자세를 보여준다.
세 번째 단계는 〈금지〉 시리즈로, 여성인물과 바리케이트, 주차금지 표지판이 같이 등장하는 그림들이다. 여성은 바리케이트에 앉아있거나 주차금지 표지판 하나를 넘어뜨리고 한걸음 나오려하고 있다. 세상의 금지된 것에 대한 저항의 행동이다. 여성인물의 치마를 걷어 올리는 모습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자하는 적극적인 소통의 태도로 읽힌다.
네 번째 단계는 현실세계에서의 조화방식이다. 〈보물섬〉 〈사랑가〉의 제목을 단 그림들이나, 여성인물이 화면중심을 차지하고 배경으로 산수풍경이 등장하는 그림들이다. 우선 산수풍경이 배경인 그림들은 여성인물이 메인이 되어 화면중앙에 포진해있다. 현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읽고자하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여인들의 손에는 신라 금관이나 백제의 향로가 들려져 있는데 역사속의 무수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일 것이다. 또한 이것은 무한한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닫힌 방 속의 에고가 아닌 수많은 인간의 역사적 행로와 연결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다.
〈보물섬〉은 앉아있는 여인의 배경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서책들과 은은하게 그려진 산수풍경이 조화를 이룬다. 서책이 의미하는 것은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탐색하는 것이며 은은한 산수풍경은 우주자연과의 조화로운 相生을 꿈꾸는 것이다.
〈사랑가〉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춤을 추고 있고 화면 상단부에는 산과 물과 어우러진 학(鶴)들이 어우러져 노닐고 있다. 남성과 여성은 단순히 남녀이기 보다는 이질적인 것들의 상징일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상으로 볼 때 박소은이 추구하는 그림세계는 모두 함께 相生하는 세상이다. 그 방법은 조화의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동양문화에서 和의 개념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상적인 관계였다. 일찍이 孔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조화하지만 같아지지 않는다)를 설파하여 각자의 정체성과 다름을 존중하는 인간관계를 제시하였다. 이후 和의 개념은 미학으로 확장되어 동양회화가 추구하는 境界중의 하나가 되었다.
박소은은 和의 미학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변용하여 독특한 화면을 창조하고 있다. 그의 메인소재로 등장하는 여성인물은 단순히 인물화가 아니라 우주와 자연, 그리고 현실세상과 만나고 소통하고 조화하는 상징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네가지 단계를 통하여 치열하게 조화를 탐색하고 결국은 서로를 존중하는 相生으로의 和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한다.
동양미학의 역사적 연속성에서 본인 그림의 정체성을 찾고 사실적인 인물표현으로 화려했던 전통의 새로운 변용을 추구함으로써 이 시대의 새로운 한국화의 단서를 제시하는 것이 박소은 그림에서 가장 주목할 점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박소은은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적 和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