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주 개인전 호랑이를 그리다

김홍주
2020 11/25 – 11/30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 작가 노트 >

 

김 홍 주

♧♧♧♧♧♧♧ 꿈의 호랑이들

호랑이가 그의 아침을 어슬렁거린다.

호랑이의 줄무늬와 바둑판처럼 질서 정연한 점들이 너무나 멋지다.

꿈의 호랑이는 상징과 허상의 호랑이다.

동화책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호랑이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진짜 호랑이가 아니다.

나만의 색을 입힌 또 다른 호랑이로 회화의 세계 속에서 허구가 되고 예술이 되었다.

 

예술은 가망 없는 것이라는 생각 –

그리고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암시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작가에게 예술은 어떤 희망일 수 있고,

커다란 행복의 징표일 것이다.

 

 

♧♧♧♧♧♧♧ 오래된 정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는 산책로에 평화로운 나무들이 새로운 자태로 덧붙여져 있다.

바람이지는 뜨락에 선홍빛 꽃과 풀의 향기 –

표현할 수 없는 오래된 정원의 아름다움이 잿빛 여명 속에서 불가해한 비밀이 되었다.

 

♧♧♧♧♧♧♧ 능소화

퇴락한 돌담이 있는 정원에서 언제 어디서든 자라는 달콤하고 씁쓸한 능소화를 본다.

조용한 정원에 퍼지는 커피 냄새, 책 냄새 –

시간 밖에서 펼쳐지는 긴 하루 –

 

♧♧♧♧♧♧♧ 어떤 신화

삶 속에 숨겨져 있는 암호들 –

완벽한 형상은 없지만, 진홍 꽃과 도시의 향기가 평화로운 오후에 금빛 소동을 일으키는 세계 –

지상의 평범한 길 위에서 과거의 덧없는 시간을 벗어나 어떤 경이로운 신화를 꿈 꾼다.

 

<평론>

호랑이를 그리다.

황주리 (화가)

 

동화적 상상의 세계를 따뜻하게 그려내는 김홍주의새로운 작업 속엔 호랑이가 많이 등장한다.

 

그의 그림 속 호랑이는 샤갈의 그림 속 말이거나 루소의 그림 속 사자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동물들은 불안한 현실을 위로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다. 작가 자신의 꿈속에 나오는 희망과 절망, 우울과 슬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전설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동물, 동물원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호랑이는 김홍주의 그림 속에서 동물적인 공격성이 사라진, 인간과 오랜 친구처럼 느껴진다. 전쟁도 테러도 절대 끝나지 않았고, 뜻밖의 바이러스 습격에 세상의 테러는 잠시 쉬는 중이다. 김홍주의 호랑이 그림은 전쟁도 테러도 없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평화로운 이미지를 펼쳐놓는다. 그의 그림 속을 지배하는 색채는 초록이다.

초록은 인간 김홍주와 화가 김홍주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색깔이다. 사람은 나이 들어도 그 서정은 나이 들지 않는 유년의 초록, 결코 때 묻지 않은 채 세상을 즐겁게 욕심 없이 살다가 떠날 그의 성품이 그림 속에 그대로 배어난다.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과 조우하며,

내 안의, 그리고 그대 안의 호랑이, 자유와 고독과 용기를 되찾으려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