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개인전
2019 02/13 – 02/18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거대한 뿌리-근원을 향한 응시
1
갈라진 표면. 한 점 바람은 불지 않는다. 깊어 보이는 지층들. 퍽퍽한 지면 위. 울퉁불퉁 물감 덩어리와 거친 흙들이 이곳이 대지의 한 표면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곳. 이 화면은 깊은 시간의 결들이 중첩되어 이루어진 현재. 시간과 시간의 흐름이 지속되고, 쌓여진 역사 속 지금이다. 또한 그 시간의 강을 따라 변곡점을 이루었던 지층과 지층들을 지나 만나는 대지의 표면이다.
2
그 표면이 갈라져 있다. 갈라져 있음으로 균질함. 매끈함을 벗어나 불규칙한 질서를 보여준다. 균질하면서 불규칙하고, 불규칙하면서 규칙적인 질서를 이어가는 지상. 화면을 주도하는 것은 갈색의 이미지와 흔적을 남기고 가는 선들이다. 갈색을 이루는 것은 물감이지만 그곳에는 흙도 있다. 주변의 대지에서 밟고 다녔을 흙. 흙이 등장함으로서 화면은 대지의 길로 접어든다.
3
큰 줄기는 대지이다. 대지이면서 흐름이다. 화면 속에 뿌려진 것들. 흙은 대지를 품고, 지상을 탄생시킨다. 거대하며 폭력적이며, 변화와 변화를 거듭하는 대지. 지층의 지층을 쌓고 쌓아 지금에 이른 표면. 이 변하지 않을 듯 보이는 대지는 거대한 변화의 지층들을 가슴에 품고 있다. 또한 이전의 모든 것을 태워 적멸의 결들을 형성한 대지의 얼굴들. 지층들이 보여주는 것은 대지의 흐름이다. 김태연의 작품에서 읽히는 큰 이미지는 그러한 대지의 흐름이다.
4
작가는 변형을 이야기한다. 지속적으로 변형된 것들이 대지를 이루고 지금을 형성한다. 지금도 그러한 변형들이 진행 중이고, 그 변형의 지층 위에 자신이 있고 그러한 변형들이 인간의 미래를 움직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변환하는 대지의 표면을 말하고자 하며, 그 대지의 변화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말하고자 한다. 그 변화는 갈망으로 읽힌다. 타오르는 목마름, 거대한 뿌리는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되고 염원되는 것이다.
5
코스모스(cosmos). 우주는 빅뱅 이후 한 번도 같은 것을 반복한 적은 없다. 늘 같아 보이지만 다른 것들이 지나고, 지속적으로 변화를 강제하는 것이 코스모스의 질서이다. 지금의 봄은 작년의 봄이 아니다. 지금은 작년의 지금이 아닌 지금의 지금이다. 작년의 봄의 구조를 가진 새로운 지금 위에 우리는 서 있는 것. 김태연의 대지는 표면을 통하여 거대한 뿌리에 다가가고자 한다. 응시는 자연을 바라보고, 그 자연, 대지 위에 존재한 인간을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그 인간의 시선에 집이 있다.
6
집들이 모여서 한 화면을 이룬다. 그 집은 사람의 집이며, 지금의 집들이다. 같은 구조를 가진 다른 집들이 한 화면을 이룬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모습을 가진, 그러나 비슷한 구조를 가진 집들이 모여 형성된 마을. 그 집에는 사람들이 살아갈 것이고, 같은 구조 속에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집은 가족과 사람을 떠받치는 대지이다. 집은 사람들의 근원이고, 항구이다. 집에서 드나들고, 집에서 안식한다. 모든 동선이 집을 중심으로 그어진다. 집은 사람의 근원, 거대한 뿌리이다.
7
대지 위를 지나는 것. 대지와 관계하는 것. 그 중간에 집이 있다. 인간은 대지 위에 살지만 대지와 집이라는 선을 긋고 그 위에 살아간다. 집은 인간이 대지로 들어가는 문이다. 대지 위에 서 있는 것이 집이다. 인간의 시간 속에 등장하는 인간의 공간. 그 공간은 허물어질 수도 있고, 새로이 건축될 수도 있다. 영원히 서 있는 건물은 없으나 되돌아가고 싶은 유년의 집은 유일하다. 그 유일한 집은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기억되는 집이다. 동시에 같은 시대 같은 구조를 가진 집들이다. 근원에 대한 응시는 김태연 회화의 근간이며 표면이다.
8
타는 목마름. 그 목마름은 욕망을 일으키고, 행동을 하게 만든다. 김태연의 회화에서 지속적으로 감지되는 것들이 그러한 목마름의 욕망들이다. 화면은 갈라지고, 그 갈라짐이 타오른 대지를 형성하고, 근원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대체로 큰 화면을 구성한다. 대지의 열망이 그렇듯이, 작은 공간으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뿌리에 대한 열망이 큰 공간의 구조를 요구한다. 큰 화면의 구조에서 이루어지는 거침없는 행위에 의한 화면의 구성은 대지가 이루는 구조와 닮아 있다. 그의 화면이 타는 목마름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갈망의 근간을 추구하는 작가의 시선이 있기에 가능하다.
9
거대한 것 속에 솟아오르는 작은 생명의 큰 욕망. 작은 풀꽃과 잎들. 지나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사물들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작가의 응시가 거대한 것에만 머물지 않고, 작은 것, 사소한 것들에도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작은 풀꽃들이 피어나듯. 거대한 힘들 속, 그 사이에도 작은 생명이 존재하고, 같은 욕망으로 자연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작은 생명의 찬란함. 그 또한 자연이며, 거대한 생명의 뿌리이다. 작가는 그러한 것들을 화면 안에 같은 질량으로 표현해 놓는다.
10
거대한 뿌리를 향한 여정. 그 뿌리는 회화의 뿌리일 수도 있고, 자연의 뿌리일 수도 있으며, 작가 개인의 뿌리일 수 있는 거대한 담론의 뿌리이다. 작가 스스로도 언급하듯이 다른 무엇이 만나서 지속적인 변종들, 변화들 속에 있음을 인지하는 것. 그런 것이 자연이며, 우주라는 것. 지상의 모든 것들의 역사는 그러한 변종의 지층들 위 무한한 변화의 속이며, 우리는 그러한 시간들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지금 속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 회화의 기능이라고 작가는 말을 한다. 그래서 작품 또한 변모 가능한 자연을 닮고 있어서, 자신은 변화하는 화면을 선택하며, 그 선택한 화면에 자신의 행위들 다시 덧입히고, 다시 선택하면서 변화 있는 화면을 이끌어 간다.
11
그 여정의 끝은 작가도, 관객들 알 수 없다. 코스모스(cosmos). 빅뱅 이후로 지속적인 변화를 가지고 있는 이 우주가 그러하듯 아무도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 김태연의 회화이다. 이것이 끝이라고 작가가 멈추었을 것을 관객이 바라보는 것. 그 멈춤을 통해 작가가 만난 작은 화면의 우주와 그 우주 속을 여행한 작가의 거대한 뿌리를 향한 탐구를 같은 층위에서 바라보는 것. 지금이 그러한 순간들이다. 작가가 그린 작은 우주는 그러므로 타는 목마름의 대지와 작은 생명의 솟아오름과 거대한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지상의 대지를 담고 관객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2019.1.12.
이 호 영 (아티스트, 미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