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 개인전 LOVE YOURSELF

김경옥
2020 12/16 – 12/21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작가노트

나는 지금의 이십대를 ‘미디어 세대’라 특징지었고, 나의 작업은 이들의 정체성을 탐구해 가는 과정이며, ‘내 청춘’의 기억들 또한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 세대’는 미디어들이 생산해내는 온갖 이미지들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세대이다.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허구의 이미지는 지금의 이십대의 삶에 그 어떤 이미지보다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이들은 영상 매체 이미지를 통해 얻어진 시각적 정체성을 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 각인시킨다. 작품 속의 인공적인 화사함과 형광빛의 ‘미디어 세대’ 이미지는 지금의 이십대들이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아이돌 스타의 허구적인 아름다움이 내재화된 것일 수도 있고, 매 순간 셀카를 찍고 ‘뽀샵’을 하면서 자신이 닮고자 하는 스타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1990년대 후반 아이돌 그룹의 등장과 월드 와이드 웹 (WWW)으로 연결된 세계에서 급속히 팽창한 대중매체의 화려함은 우리 사회의 미의식, 젠더 정체성, 소비방식 등에 큰 영향을 끼쳐 왔고, ‘미디어 세대’의 등장은 새로운 문화 흐름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미디어 세대’는 유행의 최전선에 서 있는 소비자이며 동시에 노동시장의 최약자이기에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이질적인 맥락들이 교차한다. 이는 때때로 서로 무관해 보이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놀이로 나타나기도 하고, 가볍고 파편화된 개인주의 군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방황까지 가볍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들의 방황은 모든 경계를 허물고 있다. 젠더·민족·인종·국가·종교 따위의 관념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문화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N포 세대라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연애 결혼 취업 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으려 할 뿐이며, 새로운 길을 찾아 나름의 좌표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대중 미디어의 영향에 주체성을 잃고 미디어적 외모로 규격화하는 듯 보이지만 오랜 관습을 뛰어넘는 새로운 문화의 주인공들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그들이 꿈꾸고 있는 ‘공백의 시간’은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응축의 시간이다.

‘공백’은 이처럼 기존의 질서와 고정관념의 표면이 일그러지며 균열이 발생하는 순간에 출현한다. ‘공백’은 기존 질서의 부재이며, 우리가 의존하던 상식의 파괴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규정과 관습에 젖은 사유를 정지시키는 정신의 분열이기도 하며, 새로운 질서의 탄생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공백’은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 무의식은 독자적인 마음의 구조를 말하고 특정 패턴의 반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이란 베르그송의 말대로 ‘과거 이미지들의 존속’이기에 청춘의 기억들은 어떤 계기들로 인해 불쑥 떠오른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 한 자락, 영화 속 한 장면, 한창 청춘의 시기를 즐기는 아들의 모습과 무수한 이미지들이 떠돌아다니는 인터넷 공간에서 내 기억 저편의 경험들이 반응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로 이동하고 과거의 기억들은 현재의 관점에서 포착된다. 선택된 이미지들을 가져다 새롭게 구성하고 새로운 칼라를 입히면서 내 안의 청춘과 마주하기도 하고 현재의 청춘들과 만나기도 한다.

불쑥 떠오르는 기억들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무의지적 기억’이며, 순간에 정지된 이미지들은 무작위적이고 일정한 형식이 없다. 과거의 기억과 경험들은 현재를 파고들며, 현재는 과거의 이미지들을 불러온다. 나의 작업은 현재도 과거도 아니며 객관도 주관도 아닌 예술적 감수성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시점보다 훨씬 본질적인 그 무엇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처럼 흩어져 있던 이미지들은 어느 순간 연결되어 이미지 별자리로 탄생하고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결국 나의 작업에는 스무살의 보편성과 지금을 사는 이십대의 특수성이 교차하고 있으며, ‘미디어 세대’ 이미지를 통해 현재 우리의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고 할 것이다.

2020.12.15. 김경옥


I characterized today’s 20-year-olds as a “media generation,” and my work is a process of exploring their identities, and memories of “my youth” are also mixed.

The “media generation” refers to the generation that is most sensitive to all the images the media produces. Fiction images created by the media have a huge impact on the lives of young people in their 20s. They imprint on their consciousness or unconsciousness the ‘visual identity’ gained through images floating in the mass media. The artificially bright and fluorescent images in my work also imply the fictional beauty of idol stars who are in their 20s. They may also reflect young people’s unconscious desire to resemble the stars while taking selfies and doing photoshop.

The emergence of idol groups in the K-pop scene in the late 1990s and the rapidly expanding media glamour thanks to the Internet have had a great impact on the notion of beauty, gender identity and consumption style in our society. The advent of the media generation is a symbol of a new cultural trend. The “media generation” is a consumer who is at the forefront of the trend and at the same time is the weakest in the labor market. This includes various and heterogeneous contexts politically and economically. This is sometimes seen as a game of meaning to acts unrelated to each other, or as light and fragmented individualism.

But wanderings of the generation should not be taken lightly. In fact, their wanderings are tearing down all boundaries. They are creating a new level of cultural concepts that go beyond genders, peoples, races, nations and religions. They are free from love, marriage and employment handed down by their parents. They find a new path and act on their own criteria. They seem to lose their identity to the influence of the mass media and standardize on the media’s looks, but they are the protagonists of a new culture. So the time of ‘vacuum’ they are dreaming of is a time of ‘nourishment’ to conceive new paradigm of life.

The vacuum appears at the moment when existing order and stereotypes collapse. It could mean the destruction of common sense that we relied on. It also stops the reasons corresponding to existing regulations and customs, and creates a new order. The vacuum lies in unconsciousness, which is an independent mind structure with a pattern of repetitive motion.

Memory is ‘the survival of past images,’ Bergson said. As such, my old memories pop up through some triggers. A song I listen by chance, a movie scene, the image of my son enjoying youth, and many images in the Internet space bring back my old memories and experiences. Some images are linked to another image. Old memories are seen from the present perspective. After selecting some of the images I reconstruct them and color them anew. In this process I meet my young self and meet today’s media generation.The memories that pop up to me reflect the ‘involuntary memory’ in Proust’s ‘In Search of Lost Time’. Images captured at the moment are random and devoid of a uniform format. Past memories and experiences move to the present, then bringing back images of the past. Accordingly, my work is neither in the present nor in the past. Nor is it objective or subjective. In other words, it can only be described as artistic sensibility. It is a process of discovering something more essential than the past and the present. Images scattered like numerous stars twinkling in the night sky are at one point linked together to form a constellation of images and create new shapes.Simply put, my work combines the universality of 20-year-olds with the peculiarity of today’s 20-year-olds and gives us a glimpse of our times today.

친구 지난영 (한국산업기술대 영문과 교수)


이십대의 사회적 초상과 자기애

 

김성호(Kim, Sung_Ho, 미술평론가)

 

  1. 불안한 중성성 이십대의 사회적 초상

작가 김경옥은 이십대의 사회적 초상을 그린다. 인터넷과 대중문화의 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십대의 다양한 이미지를 채집해서 재해석된 팝아트의 조형 언어를 구사한다. 특정 상황을 선보이고 있는 인물 형상과 엷은 층의 물감을 올려서 비교적 정밀하게 묘사하는 구상의 형식 그리고 그 뒤에 대조적으로 배치된 기하학적 패턴의 배경과 그것이 창출하는 일루전의 효과는 미디어 시대로 규정할 수 있는 오늘날 이십대의 자기애로서의 욕망과 사회적 초상을 시각화하기에 족하다.

먼저, 출품작들이 함유하는 중성성(neutralité)은 오늘날 이십대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생각해 보자. 중성성은 이것과 저것 사이의 경계를 명료하게 제시하지 않고 ‘이것/저것’의 경계를 한데 아우르는 혼종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나이가 성년기에 접어들었으나 정체성은 미성년과 성년 사이를 오가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미래를 사는 이십대의 불명료하고 불안한 정체성과 같은 것이다.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중성성은 시각적으로 소녀/소년, 수줍음/장난기처럼 ‘이것/저것’이 혼성된 무엇으로 나타난다. 특히 여성과 남성의 분별 가능한 성적 정체성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중성성 속에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는 경우가 다반사다. 동일한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한 남성과 여성이 마주하고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쌍둥이 같은 이들은 서로의 성징이 교차하는 중성성의 의상과 외양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성 역할이 전도되는 오늘날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가시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경옥의 많은 작품 속 등장인물은 때론 웃거나 슬며시 미소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개는 감정 상태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미묘한 ‘중성성’, 그것도 ‘불안한 중성성’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것은 ‘웃고 있어도 웃는 것이 아닌 이십대’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상황을 어김없이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다수의 이미지가 그러하다. 아슬아슬하게 옥상 난간 위를 걷는 위험한 모험에 탐닉하는 청년, 수많은 길 앞에서 방향을 잃은 듯 서 있지만 확고한 의지를 표현한 뒷모습, 알수 없는 비정형의 상황 앞에서 무엇인가 찾고 있는 뒷모습 등 다소 해학적인 표현에 이르기까지 작품 속 등장인물은 불안한 중성성의 상황을 연출한다. 대개 그것은 무표정, 무관심의 상태이거나 양자를 혼성하는 ‘교착 혹은 균형(standoff)’이 혼성된 중성성의 상태로 가시화된다. ‘침체/평온’이나 ‘고요/우울’이 그리고 ‘번민/설렘’ 혹은 ‘불안/흥분’이 뒤섞인 채로 말이다. 가히 ‘불안한 중성성’이라 할 만하다.

 

  1. 인식론적 실천 봄에 더 많이 하자

작가 김경옥은 선택과 포기의 안팎을 지내는 현재의 이십대를 흥미롭게 선보인다. 그녀가 선보이고 있는 작품 <춥다, 봄에 하자>(2019)는 의미심장하다. 남녀 한 쌍이 방 안에서 옷을 벗고 있는 긴박한 순간을 묘사한 이 작품에서 누군가의 발화(發話)는 우리의 상상과 기대를 오염시키고 이내 우리를 아련하게 만든다. “춥다. 봄에 하자.” 영화 〈소공녀〉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다. ‘너무 냉방이라 사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과도 같이, 비루하고 궁핍한 현실을 사는 이십대를 얼마 전까지 우리는 ‘N포 세대’라 불렀다.

오늘을 사는 이십대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아르바이트에 나서면서 청년 세대의 갑갑한 고용 현실을 피부로 절감한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이성에 대한 관심과 열정, 내일 대신 오늘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신명나게 보내는 무모함마저 그들의 삶에는 녹아 있다. ‘소소하게 낭비하며 느끼는 재미’를 일컫는 ‘탕진잼(蕩盡잼)’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여 일컫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이십대의 초상으로서 말이다. 탕진잼과 소확행을 즐기는 오늘날의 이십대를 우리는 ‘현재를 즐기는 젊은이의 삶의 방식’을 은유한 ‘욜로(YOLO)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명이 드러내는 “춥다, 봄에 하자”는 결코 포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오늘의 현실을 직시한 ‘존재론적 자각(自覺)’이자, 내일을 위한 ‘인식론적 계획’을 내포한다. “추우니까, 봄에 더 많이 하자”는 의미로서 말이다.

 

III. 미디어 초상의 욕망과 자기애 빛나지 않으면 또 어때

김경옥의 작품 속에서 추적하는 이십대의 모습은 소비 사회의 미디어와 늘 함께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것은 나이키나 스타벅스, 코카콜라, 겐조와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나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페이스북과 같은 미디어가 생산하는 디지털 콘텐츠를 담는 SNS의 세계와 같은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오늘날 이십대는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미디어 세대로 가히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 할 만하다.

작가는 방탄소년단(BTS)의 구성원인 알엠(RM)과 지민(Jimin)의 초상을 그린 최근작에서 유명 아이돌과 대중 스타에 대한 이십대의 팬덤(fandom) 현상을 추적한다. 오늘날의 이십대는 덕밍아웃(덕ming-out)을 통해 자신이 대중스타의 열광적 지지자임을 공개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십대의 팬덤 현상은 더는 수동적인 소비자만이 아닌 유행의 최전선을 만드는 생산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다.

이십대가 몰입하는 팬덤 현상은 ‘자기애’의 또 다른 변형임은 물론이다. 이들의 자기애는 예비 스타를 지원하면서 대리 만족하는 ‘양육자 팬덤’을 넘어 유튜버, 스트리머, 틱톡거, BJ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미디어 초상’을 생산하는데 한 발 더 나선다. 작품 〈빛나고 싶다〉(2020)는 반짝이는 보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이십대 여성의 초상을 통해서 ‘보석처럼 빛나고 싶은 이십대의 자기애라는 욕망’을 추적한다. 지독한 ‘자기애’는 삶을 위한 욕망의 첫 출발점이다.

프로이트(S. Freud)에 따르면, 인간 행동이란 생물학적 충동과 본능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욕망에 의하여 동기화된다고 주장한다. 본능적 욕구를 잉태하는 무의식의 층위인 ‘이드(Id)’는 자기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 작품이기도 한 <LOVE YOURSELF> (2020)에서 시지프스로 가득한 도시의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이십대의 강렬한 눈빛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하나의 선언적 아포리즘이 된다

우리는 이드와 욕망을 억제하는 윤리적인 존재인 초자아, 즉 ‘슈퍼 에고(Super ego)’ 사이에서 현실적 자아 혹은 이성적 자아라 불리는 ‘에고(ego)’가 부단히 작동하면서 욕망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되새긴다. 김경옥의 작품 속에서 이드의 자기애를 누른 채, 잠들지 않는 불야성의 도시 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 한 청춘의 모습을 본다. 이드의 자기애로부터 에고의 정체성을 회복한 자아처럼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안다. ‘빛나는 미디어 초상’이 되려는 욕망은 현실을 자각하는 ‘에고’의 조정으로 “빛나지 않으면 또 어때”란 자가 위안을 불러온다는 현실을 말이다. 그 꿈과도 같은 욕망을 잠시 무의식의 영역에 묻어두지만 이십대는 오늘도 꿈꾸고 희망한다. 자신의 불안한 정체성마저 기꺼이 사랑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