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영 개인전 TIMELESS
전혜영
2019 08/14 – 08/19
3 전시장 (3F)
TIMELESS
어느 늦은 여름날 소풍삼아 찾은 상암문화비축기지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 어느 이름 모를 모퉁이를 돌았을 때 예기치 못한 풍경을 만난 것처럼 천천히 거닐며 눈에 담고 싶은 공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전 산업화 시절 비축석유를 보관하던 국가시설이었으나 도시재생을 통해 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곳으로 소용이 다해 흔적 없이 사라졌을 공간을 유지와 재생의 융합으로 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은 창작의 장소로 재탄생해 있다.
오랜 시간동안 까만 에너지를 담고 있던 푹 익은 색깔들이 깨어진 석벽에 켜켜이 배어있기도 하고, 새롭게 입혀진 생생한 날 색의 구조물이 서로 조화롭게 버티고 있다.
처음에는 인공 건조물 이었을지언정 긴 시간을 품은 자연의 색이 시나브로 배어있어 마치 고대유물의 흔적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
자연은 시간이 흘러 처음의 색을 잃어가도 초라해지지 않으며 고색창연함이 더해져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내 색깔을 고집하고,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 한다. 이 곳 에서 나는 시간 속에 동화되는 자연처럼, 스며들기도 하고 다양한 색깔을 품을 수 있는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희망해 본다.
오랜 시간 버텨온 자연을 보면서 가끔은 삶에 지쳐 힘들었던 지나간 날들을 기억 속에서 지우기보다는 내 인생의 소중한 장면으로 추억하고, 그 시간들을 버팀목으로 삼아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내 속의 모습을 찾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살짝 감추기도 하면서 내일을 희망하고, 다음 세대에게 손을 내밀면 영원한 시간 속에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선물 같은 아름다운 공간을 만나게 되고, 오랜 세월 묵어 깊어진 색과 지금의 새로운 색깔들이 먼 훗날 어느 시간에 만나게 되면 또 어떻게 아름다운 색을 쏟아낼지 상상하면서 캔버스에 옮길 생각을 하니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는 마음마저 들었다.
여행은 떠나기 전에 가장 두근거리듯이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면서 마치 새 집을 설계할 때처럼 긴장감이 맴돌고, 색을 채우는 동안 무척 설레이는 마음이었다.
색들은 늘 어울려 섞이며 기대하지 않은 향연을 선물하는 것처럼 내 캔버스에 입혀진 색들이 세월이 오래 지나 어떻게 아름답게 익어갈지 기대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