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선 개인전 지층 형상화 연구전

안유선
2019 04/03 – 04/08
3 전시장 (3F)

형상의 모태적 요소를 찾아서

( 안유선의 판화전에 부쳐)

 

임두빈 : 단국대 교수, 미술평론가

안유선은 첫 개인전에서 꽃이나 나뭇잎, 풀잎 등 다양한 식물의 이미지를 바탕에 깐, 동물 형상을 그린 목판화를 선보였었다. 물고기와 범고래 등 다양한 해양동물들과 얼룩말과 멧돼지, 사슴, 토끼, 조류가 작품속에 등장했는데, 그림속의 물고기들은 물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 같지않고 마치 기억속에 영원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얼룩말이나 멧돼지, 사슴등의 동물들도 마치 박제된 형상처럼 화면에서 어딘가 어색하게 시간이 정지된채 붙어있는 듯 했다. 젊은화가 안유선은 동식물의 이미지들을 살아있는 생물로 그리기보다 장식적 조형 요소의 하나로 간주하는 듯 했다. 바탕화면이나 어류의 몸에 까지 그려진 식물의 이미지는 그런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창작의 심층심리적(深層心理的) 측면에서 보면,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어류나 육지동물의 이미지들은, 작가 자신도 의식하지못한 무의식적 세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정신분석학(精神分析學)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Freud)와 칼 구스타프 융(C.G.Jung)은 다윈(C.Darwin)의 진화론(進化論)을 심리학적으로도 이해하여, 지구상에서 생물체가 진화를 거듭해 온것처럼 인간의 심리도 진화해 온 것으로 보아,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원시조상이었던 생물들의 심리적 잔재가 장구한 시간을 거쳐 축적되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바로 안유선의 초기 작품에서 보이는 식물이나 해양동물과 육지동물의 이미지들은 그의 무의식속에 잠재되어있는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에 대한 향수가 반영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하는 점이다. 안유선의 예술적 상상력은 그 자신의 내면을 탐색의 대상으로 삼아 무의식(無意識)의 심연(深淵)에로 잠행(潛行)하며 그가 감지한 정서적 울림들을 식물이나 동물 등, 다양한 생명체의 형상을 통해 표현해 왔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점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그 작품들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감각적 장식성이 우선하는 서정적 이미지의 그림들이었다. 표현의 측면에서 안유선은 자신의 작품에 합당한 조형방법을 찾기 위해 보다 긴 연구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때가 2006년 11월 초 였으니까. 벌써 10년이 지난 것이다.

그동안 안유선의 작품세계에도 조용한 변화가 있었다. 구체적인 동식물의 이미지에서 일상적인 대상을 거쳐 서서히 추상적 조형의 세계로 변화되어 가면서, 전체적으로는 보다 함축적이면서 상징적인 화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작품세계의 분명한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전히 등장하는 나뭇잎의 형상을 이용한 추상적 구성의 작품들은 평이한 조형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최근에 그린 독특한 이미지의 부정형한 색면은 개성적이고 조형적 깊이감이 있으면서 새롭다. 평이한 나뭇잎 구성의 작품들 보다 한 차원 더 긴장감 있는 조형적 에너지로 충만한 작품이다. 물론 여기에도 식물의 이미지는 남아 있지만 그것은 종래에 그가 해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시각적 에너지와 의미를 지니고 다가온다. 어두운 색면의 구체화 되지않은 모호한 부정형한 이미지는 감상자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조형적 긴장감을 지니고 있다. 어떤 것은 미지의 숲의 원시적 탄생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는 지각의 뒤틀림과 새로운 대륙의 융기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연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감상자를 주목케 하는 것은 이러한 형태가 지닌 사고(思考)를 유도하는 강렬한 조형의 힘이다. 안유선이 새롭게 그린 독특한 이미지의 부정형한 색면들은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를 지닌 의미있는 시각적 덩어리로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독특한 시각적 덩어리들은 다양한 이미지를 생성시키고 변화시키는 풍부한 형상의 모태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유선은 끊임없이 의미있는 조형의 가능성을 찾아 헤맨 끝에 비로소 형상의 모태적 요소를 간직한 디오니소스적(Dionysos的) 이미지 덩어리의 한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발견한 독특한 이미지의 덩어리는 개성적인 미의 울림을 보여준다. 그것은 안유선이 한사람의 판화가로 자신의 독자적 시각을 지니고 걸어가기 시작했다는 귀중한 증거이기도 하다.

2017년 1월 17일 서북서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