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봉렬 개인전 마음이 머무는 풍경
허봉렬
2024 10/02 – 10/08
2 전시장 (2F)
<작가노트>
내 그림의 소재는 주로 나무와 자연풍경이다.
그것은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주관적인 나의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꿋꿋이 한자리를 지키며 생명의 환희가 가득한 연록으로부터
화려한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을 지나 쓸쓸한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겨울에 이르기 까지
사계절 변화하며 시간의 흔적과 삶의 인내를 일깨워 준다.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며
작품이다. 언제나 아름답고 평온하다.나는 자연풍경을 그릴 때 자연과 소통하고 마음의 평안과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한다.
시시각각 수시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자연풍경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하고
내가 느낀 감성을 작품에 스며들게 하며 더욱 아름답게 기록하는 작업이 좋다.
그래서 나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실경 자연풍경을 화선지에 담아오고 있다.
때로는 서양화 기법을 차용하여 강력한 색채를 쓰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는 여행길에서 만난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었던 자연풍경’을 주로
화선지에 옮겼다.<선운사 도솔천>, <강가의 복숭아 밭>, <산동마을의 봄>,<성산일출봉>, <청산도> 등이다.
그리고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운 추억들을 회상하며 보령시 청라마을 산 모퉁이에서
보았던 감나무를 그렸다. <가을서정>이다. 한편 <가을의 노래>에서는 가족을 위해 말없이 헌신하다가 몇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밀려오는 회한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사실 이번 전시는 젊은시절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준비되었다.언젠가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그려 선물하겠다는 약속의 실천이다.<가을날의 호수>는 아내를 위해 그렸다.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자작나무 꽃말의 의미를 담아 가을 맑은 호숫가에 자작나무를 그리고 호수 너머 멀리 아름답게 단풍이 물든 산을 그렸다.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상징한다.
단풍이 물든 산그림자가 드리운 호숫가에는 함께 여행을 떠날 조각배도 그려 넣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 그림과 자작시 <자작나무 숲에 서서>를 아내에게 헌정한다.
좋아해주면 큰 위안이 될 것 같다.
<자작나무 숲에 서서>
나는 아직
가을을 앓고 있다.
뜨거운 열정으로 푸르렀던
청춘의 꿈은
무성했던 여름을 지나
가을 속에서 서성이다
마침내 10월 어느날
온 몸을 사랑의 신열로 지피우고
이른 신새벽
자작나무 숲 붉은 단풍 속으로
홀연히 빠져나갔다.
내밀한 언어도 남기지 못한채…
내 심중에 남아있는
미처 말하지 못한 사랑의 밀어는
끝내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처럼
깊은 한숨이 되었다.
계절은 가고, 오고
다시 가을은 깊어가는데
나는 지금
해 저무는 자작나무 숲에
혼자 서 있다.
나는 아직
사랑을 보내고 있다.
이제 칠순을 훌쩍 넘긴 내 인생의 황혼기에 만용을 부려 부끄러움을 세상에
내보인다.
혹여 내 풍경작품을 보게되는 사람 중에 그곳에 가고 싶거나, 그곳에 다녀왔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추억할 수 있다면 나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