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성 개인전 Dream in a Dream

전대성
2024 05/08 – 05/13
3 전시장 (3F)

미술부의 낭만이 좋았고 그림이 좋아…. 무작정…. 삼수 사수 오수를 거쳐

미대를 졸업 하였지만. 피카소…. 고흐 같은 작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나 다 하는 그 잘난 작품들을 비웃기도 질투하기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힘들고 어렵게 만들어낸 그들만의 작품들은 결코 따라갈 수 없었다…나만의 무엇을 만들더라도 치기에 가까운 장난이 되어 8차원 또라이 작가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그냥 다 포기하고~아니 포기하게끔 만든 현실 속에서 정말 나다운 것을 알았을 때정작 죽을 만큼의 가슴 저림이 반복적으로 주먹질하고. 짱짱했던 나의 체력은 땅바닥과

친해지곤 했다. 술도 안 먹고 맨정신에. 눈은 밤송이처럼 부어대고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어지럽고 삼수 사수하며 날 세우던 그런 극한의 밀어붙임도 아닌데

내가 건너가야 하는 작업대 앞에서는

마치·지구를 벗어나는 우주선처럼 중력의 가부하가 나를 쥐어짠다.

왜? 왜? 왜? 라는 질문의 3년 전쟁은 그 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한

내가 사라지고 자칭 타칭 이름도 지을 수 없는 크기도 없이 무한한 그것이 나를 채우더니 왜? 라는 질문 자체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무엇을 이라는 질문에 내가 얻은 대답은 매개체 적 인식이다.
우리는 따로 존재하지만.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전쟁통에. 내가 너를 죽였으나 사실 죽임을 당한 너는 나였다.
우리는. 진동으로 연결된 끈이다. 선이다.
아버지가 잡아 드신 누렁이도 사실은 뒤지게 처맞고 불에 그을린 울 아버지의

다른 측면의 누렁이인 것이다.
물론 피카소의 입체파 미술은 눈깔이 뒤통수에 붙어도 되는

보이는 시각의 입체적 측면이겠으나. 나는 우리가 서로 연결된 선들의 면을 표현하는

보이지는 않으나 느껴지는 다른 차원의 측면이다

하지만 어떻게 라는 질문 삼십 년 삽질의 결과로 얻은 건 단 하나의 보라색 빛을 본 것뿐
바둥거리다 보니 매개체적 인식의 표현방법이 이미 내 몸에 이미 녹아져 있었다

눈치를 챈 순간 그 눈치 챗던걸 표현한 자화상을 시작으로 선(line)들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의 대답은 선이다. 그 선이 무엇인가?
나는 나의 시공을 라인으로 표현하며 막걸리 바다에 살고 있다…. 내가 나다워지는 것…. 그것이 일치이다. 일치란 내가 나를 벗어나는 것이다.
일치가 반복되면 그것은 밀도가 된다.

밀도는 차원의 만남을 이룬다.

(남연)覽連 전 대성 작가 노트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