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경 개인전 유토포스(U-Topos)

박제경
2018 08/01 – 08/06
특별 전시장 (B1)

본인은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을 캔버스에 자연스럽게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상하는 것을 즉흥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본인은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 작업에서는 시간적 한계를 가졌다. 생각하는 것을 바로 그려나가려는 작업 방향은 사실주의적 표현방식에서 선묘로 표현하게 되었고, 이는 레이스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선의 반복된 겹침은 캔버스의 면을 다 채우지 못하고 겹쳐도 안이 보인다. 선은 생각하는 것을 정밀하고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레이스선의 재발견은 본인에게 작업과제와 함께 작업의 방향을 제시하여 주었다.

본인은 가느다란 선에서 상상적이며 직관적인 내면을 들어다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본인의 작품 <유토포스(U-Topos)>의‘유토피아(utopia)’적인 이미지를 상상적으로 표현하며 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고갈 되어가는 마음속의 유토피아를 통하여 인간의 꿈을 찾고자한다.

이는 현대미술의 다양함 속에서 ‘나’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함으로써 본인만의 감성을 선묘기법을 통하여 U-Topos연작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렇듯 본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담으며,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유토포스(U-Topos)>

나는 레이스(lace)덩어리 안에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담았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는 모든 개체가 조화를 이루는 세계다. 모든 개체는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어 본질의 영역에서 상호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레이스에서 조형미를 찾아 그리는 이유다. 나는 몰입을 통해 희열의 시간과 마주하며 곡선의 변주는 나만의 레이스가 된다. 이러한 곡선의 변주는 평면 캔버스 위에서 자유롭게 평면과 입체를 넘나든다.

레이스로 된 덩어리는 레이스 자체로 실체임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 실체적인 덩어리가 해체되어 기화(氣化)되는 모습을 만들어 동시에 비실체적인 이미지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형상 내부는 사전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그리며 그곳에는 사람, 새 그리고 곰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부는 하나의 사회로서 ‘우리’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간의 조화(調和)를 형상화 시키려 하였다. 나에게 있어 ‘조화’란 현대사회에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선들은 무정형한 덩어리로 때론 여성의 몸, 날개, 그것의 복잡 다양한 실루엣을 통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된다. 미세한 선들은 자유롭고 즉흥적인 움직임을 통해 화면 안에서 자율성과 생명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림 속 씨실과 날실의 집합형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며, 바라는 세계인 것이다. <유토포스(U-Topos)>는 실재하는 세계이자 비실재하는 세계이며, 그것이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Utopia)’의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나는 세상을 보여 줄 덩어리를 이미지화하고 그 실루엣을 통해 또 다시 세계를 만든다.

나 한사람 설자리를 찾던 그곳에서 지금은 본인이 바라는 세상을 찾는다. 내가 살고 있는 이사회와 내가 바라는 사회에 대한 계속되는 회의와 의문에 대해 지금의 작업을 통해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내 마음속의‘유토포스(U-Topos)’는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제작 방법>

 

<U‑Topos> 연작의 ‘거미줄 잣기’ 기법

본인은 구타에(gutta)를 사용하여 레이스의 장식적인 형식을 섬세하고 돌출된 선묘로 표현한다. 구타에는 튜브(tube)형 염색안료로 짜서 사용하므로 힘의 강약 조절을 요구한다. 이러한 방식은 숨을 멈추고, 팔과 손목을 자유로이 움직이게 한다. 몰입을 통해 나만의 시간과 마주하며 이는 드로잉에 의한 자유로움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즉흥적이며 유희에 의한 직관적 표현을 통하여 머리속에 그려지는 것을 선묘로서 형상을 만든다. 이러한 본인의 작업 방식은 조광제의「레이스, 또 다른 회화적 관능의 세계」의 비평글에서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라는 본인만의 고유한 기법이 되었다.

형상만큼이나 중요한 작품 속 공간은 여백을 염두하며 전체 드로잉을 구축해 나간다. 화면 속 여백의 공간은 겹겹이 쌓이는 레이스 형상에 의해 자유롭게 오고 가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표현 기법은 레이스의 패턴화 되는 장식성에서 머무르지 않고 내면을 형상화한다. 이는 일반적인 레이스의 장식성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덩어리를 꾀하는 레이스의 겹쳐짐은 평면적 패턴에서 벗어나 입체적 형태로 표현하고자 한다. 하나의 덩어리는 개체로의 또 다른 세계로서 본인이 생각하는 세상인 것이다. 몰입의 상태에서 본인은 온전한 모습으로 이상의 세계에 이른다.

 

 

<평론>

 

U-Topos Sequence

오늘날 미술가들의 가장 큰 고통가운데 하나는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을 발견하여 완성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경계가 허물어져 재료의 선택이나 표현방식에서 폭 넓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크로스오버 작품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창적인 조형을 탐구하는 길은 길고 험난하며 그 끝은 희미하게 보일 듯 말듯하다.

박제경작가는 오랜 기간 동안 ‘U-Topos’ 시리즈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토리와 조형기법을 모색해왔다. 작품의 제목에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성이 무엇인지 잘 표출되어 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U-Topos’ 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박제경작가의 작품에서는 유토피아의 장소로서 관념의 공간을 의미한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초월성을 추구하는 ‘U-Topos’는 작가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방식과 같은 의도로 제작된 작업이다.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을 연결하여 끊길 듯 그러나 끊기지 않는 영원성이 강조되어 있는 ‘U-Topos’는 우아한 여성성과 로맨틱한 장식성이 강조된 레이스(lace)의 선적인 묘사로부터 시작된다. 섬세하게 구멍 난 레이스의 겹친 선들의 묘사는 여성의 ‘시스루(seethrough)’를 가능케 하여 유혹과 감춤, 열림과 닫힘의 동시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동시성을 투영한 선적인 묘사가 초기에는 ‘레이스(lace) 기법’으로 알려졌으나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최근에는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로 불리고 있다.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

박제경 작가는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레이스(lace) 시퀀스’를 제작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조형적 공통점은 유하면서도 연연히 이어져있는 삶의 미로와 같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선은 반복되어 중첩되면서 겹쳐지고 있는데 선과 선이 얽히고설키는 틈새로 간간이 속이 드러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화가의 생각을 정밀하고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속적인 곡선 레이스(lace)의 미술적 재발견은 박제경작가에게 작업과제와 함께 작업의 방향을 제시하여 주었다. 반복적인 시행착오 끝에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정형의 거미줄 잣기의 선적인 묘사는 작가의 자율성과 생명력의 독창적인 표현방식이 되었으며 오늘날 작가 고유의 상징성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는 평면의 선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구타에(gutta)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섬세하게 돌출된 선묘로 묘사되었다. 구타에는 튜브(tube)형 염색안료로 짜서 사용해야 하므로 힘의 강약 조절이 요구되는데 표현의 극적인 순간에는 숨을 멈추고, 빠른 손놀림으로 원하는 조형을 구성한다. 그 순간 작가는 즉흥적인 자아의 몰입을 경험하며 드로잉의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 되고 작품과 함께 혼연일체의 온전한 모습으로 환상적인 ‘U-Topos’의 세계에 다다른다. 그리고 묘사된 그 세계는 어디에도 없는 우리들이 꿈꾸고 있는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U-Topos의 변주

캔버스를 충만하게 채우고 있는 거미줄 잣기의 리드미컬한 곡선의 시각적인 이미지는 마음의 평화를 주며 시기 질투 다툼과 욕망으로부터 유토피아의 세계로 순화시킨다. 구체적인 스토리를 배제한 채 풍만하고 평화로운 다채로운 선의 유희는 유토피아를 항해 손짓하며 비상하고 초월적인 세계를 향한 조형적 상상력의 완성이다. 작품의 형식은 추상으로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은 형상들을 찾아 낼 수 있는데 이는 추상에서 나타나는 모호함과 긴장감을 우려하여 여유를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로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작가의 끊임없는 변주가운데 하나이다. 유토피아의 세계를 향해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상징적인 동물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인생과 연계되어 있다. ‘U-Topos’ 시리즈에서 몽환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다채로운 색채는 본연의 색채를 유지하며 눈에서는 서로 섞여 보이고 때로는 현란하게 혼재되어 신비로운 색으로 가득 차 있는데 작가의 내면이 투사된 ‘드러내고 싶으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색채들의 향연이다.

박제경작가의 ‘U-Topos’ 시퀀스는 무한한 작가적 독창성의 충만함으로 현재의 아우라를 드러내고 있으므로 여전히 앞으로의 작업이 기대되는 작가이다.

 

김 향 숙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겸임교수)

 

– end –